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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숨결
지난 주는 성원이 되지 못해 오랜만에 금요산행을 쉬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잡은 근교 보문산 숲길 걷기, 거리 15km로 폭이 넓고 완만한 산길, 빛바랜 수채화처럼 은은한 단풍 속, 흐린 날씨에 걷기에 참 좋았다.
버티기 막연히 기다린다는 것은 짙은 안개 속을 거니는 것 칙칙하게 늘어나는 시간과 싸움 숨 깊이 들이쉬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는 굳게 빗장 걸린 공간 아삼아삼한 안개 속에서 엇섞인 마음은 박새처럼 오르락내리락 눈앞은 어웅한 동굴 속 달려오는 차바퀴처럼 재깍거리는 시계 바람 따라 우러나온 생각만 안달복달 한여름 모래밭에 밀려드는 밀물처럼 가슴을 흥건히 적셔 놓지 설렘이 깃든 기다림이란 결코 달콤한 것만은 아니야 시린 달빛이 어루만지는 은빛 산야처럼, 긴긴 기다림은 후비어 파고들며 핏줄을 울리게 하지만 무기수의 가출소처럼 한 줄기 희망을 주기도 하지 누구도 짧은 여름밤의 단꿈을 포기하지 않아 옴나위없는 애옥살이처럼 짓눌려도. -- 다층 75호(2017년 가을)--
봄의 점묘 흥건히 젖은 단꿈 깨어나 뒤돌아보지도 않고 봄날은 도둑고양이처럼 떠나가는데 호젓한 산길 힘없는 나무 긴 팔 뻗어 칙칙한 길바닥에 심어 놓은, 점점이 피어나는 꽃잎 멀리 떠난 여인의 눈빛처럼 흔들리는데 매달리던 손 놓아버리고 너운너운히 허공의 밑바닥에 내려앉아 더 환하게 물결치는 뒷마무리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뛰어넘어 무희 같은 몸짓으로 마지막 그려 놓은 풍경화 세상의 먼지 털어버리고 그림이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선다. --다층 75호(2017년 가을)--
고교 동창 모임이 서울과 순천에서 동시에 있었는데, 바람 부는 갈대밭 길을 택했다. 정화섭, 송어지니, 김홍주, 모두 좋은 옛 친구들, 지난날이 아지랑이 피어오른 봄날처럼 아물거렸다. 토요일 오전 10시 S-train을 타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원하여(?), 추진했던 동인지 발간. 문학회 임원이란 봉사직, 문학회 발전을 위한 일념으로 물심 양면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극히 불편한 마음, 서슴없이 회장 직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떠나는 뒷 모습이 이지러지지 않도록, 무리없이 차분하게 마무리했다. 고달픈 일년 간의 활동이 재래시장의 국밥집에서 한 잔의 술로 끝났다.
매표소부터 복천암까지 2시간, 부담 없이 걷을 수 있는 산책로, 술 한잔에 가을이 그려 놓은 그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세상을 떠나신 지 17년, 잔디 위로 어른거리는 모습, 가슴이 시리다. 추석이 지난 후 첫 일요일, 아들, 딸부터 증손자, 증손녀까지 모인 자리, 꼬마들의 절이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