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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숨결
사랑이 나가다 - 손 이야기 1 이문재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손을 잡았다 놓친 손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나간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어제였는데 내일로 넘어가버렸다 사랑을 놓친 손은 갑자기 잡을 것이 없어졌다 하나의 손잡이가 사라지자 방 안의 모든 손잡이들이 아득..
첫사랑 문성해 마당에서 비눗물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 애의 퉁퉁 불은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점심 전이었고 삼촌 방에선 정오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고 담장 밖 돼지우리에선 산달을 앞둔 커다란 몸이 뒤척이는 소리 아무래도 흘러나오는 것들이 유독 많았던 그 날 내 몸에..
극장에서 고경숙 비가 억수로 퍼붓던 주말 빗속에서 자연스레 묶여지는 짝짓기 놀이 협립, 신광, 닥스... 상표별로 색깔별로 끼리끼리 길게 늘어선 우산 속 여기저기서 땅콩처럼 사소한 대화들 우산 끝에 뚝뚝 떨어졌다 검표원에게 걸러지자마자 빨려들듯 도망치듯 빠르게 흩어져 더듬더..
반경환의 명시감상 1 ----유홍준의 「문맹」에 대하여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같다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無化의 길......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지공..
튀밥에 대하여 안도현 변두리 공터 부근 적막이며 개똥무더기를 동무 삼아 지나가다 보면 난데없이 옆구리를 치는 뜨거운 튀밥 냄새 만날 때 있지 그 짓 하다 들킨 똥개처럼 놀라 돌아보면 망할놈의 튀밥장수, 망하기는커녕 한 이십 년 전부터 그저 그래 왔다는 듯이 뭉개뭉개 단내 나는 ..
석모도 민박집 안시아 바다에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나눠줄 광고지 한 켠 초상권을 사용해도 된다는 계약조건이다 인적 드문 초겨울 바닷가, 바다는 세를 내릴 기미가 없고 민박집 주인은 끝물의 단풍처럼 입이 바짝 마른다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게 없다 슬..
한국문단 이끌 시인 등용문 - 작품마감 4월19일 한국 시문학사의 우뚝한 봉우리 정지용 시인을 기리고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시인을 발굴키 위해 제정한 ‘지용신인문학상’의 19회 주인공을 찾습니다. 500만원 상금과 함께 지용선생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지용제 행사..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올봄 꽃들이다. 겨울은 아주 길었는데, 갑자기 좀 따뜻한 날이 많더니만 차례를 가리지 않고 막 피어버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컴에 오래 앉았더니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난 것처럼 한쪽으로 점점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어 그걸 진정하느라고 누워 오름에도 못 갔..
출처 : 포엠스퀘어 [문학광장]글쓴이 : 문학광장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