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첫사랑 / 문성해 본문
첫사랑
문성해
마당에서 비눗물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 애의
퉁퉁 불은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점심 전이었고
삼촌 방에선 정오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고
담장 밖 돼지우리에선
산달을 앞둔 커다란 몸이 뒤척이는 소리
아무래도 흘러나오는 것들이 유독 많았던 그 날
내 몸에서 비릿한 초경과 함께 울음이
흘러나왔고
학교에서 나를 데리고 온 그애 곁에서 문득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하고 있었고
이북 방송을 다시 듣기 시작한 삼촌이
먼
길 가는 기러기들 행렬을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막내 동생처럼 조용했지만
내 안의 피가 몽땅 흘러나가고 남모를
피로 조용히 바꾸어진 그 날 저녁
나는 기르던 토끼를
태연히 식구들과 둘러앉아 먹을 수가 있게 되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핏빛 같은 노을이 떠내려가는 수챗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그 날부터였을 거다
내 몸이 둥싯 둥싯 보름달처럼 부풀기 시작했던
것은,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귀로 듣는 눈>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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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초경을 시작한 사춘기 소녀의 신체적 변화와
미묘한 심리상태가 ‘첫사랑’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첫사랑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장통으로 해석된다.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변화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초경,
삼촌의 한숨소리, 토끼, 핏빛 노을, 보름달 등을 통하여
농밀하게 익어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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