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본문
사랑이 나가다
- 손 이야기 1
이문재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손을 잡았다 놓친 손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나간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어제였는데
내일로
넘어가버렸다
사랑을 놓친 손은
갑자기 잡을 것이 없어졌다
하나의 손잡이가 사라지자
방 안의 모든 손잡이들이
아득해졌다
캄캄한 새벽이 하얘졌다
눈이 하지 못한
입이 내놓지 못한 말
마음이 다가가지 못한 말들
다
하지 못해 손은 떨고 있다
예감보다 더 빨랐던 손이
사랑을 잃고 떨리고 있다
사랑은 손으로 왔다
손으로 손을
찾았던 사람
손으로 손을 기다렸던 사람
손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사랑은 눈이 아니다
가슴이 아니다
사랑은 손이다
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손을 놓치면
오늘을 붙잡지 못한다
나를 붙잡지 못한다
1959년 경기도 김포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2년 [시운동]으로 등단
2005년
지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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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사랑을 ‘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눈이나 마음, 그리고 입이 아닌 ‘손’이라는
감각수단이 때로 절실한 사랑의 감정을 표출해 내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첫만남도 손 떨리는 감촉으로 시작하는 법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이별의 순간도 절박한 손 떨리는 악수가 대신하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랑입니다. 언제든지 손짓으로 부르면
다가갈 수 있고, 언제든지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 수 있을 때 사랑도 완전해지는 법입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말로 표현해 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첫만남의 손 떨리는 사랑, 그 순수한 감촉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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