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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숨결
유치원이 방학을 하여 건률이가 집에 왔다. 보지 못한지 몇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 많이 늘었다. 애들은 하루볕에도 부쩍부쩍 자라는가 보다. 한여름 오후가 정자 속 이름 모를 여인처럼 졸고 있었다. 마송이와 마롱이가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꿩을 덮쳤다. 놀란 어미는 도망가고 홀로 남은 새끼가 슬프다. 무더운 한여름 오후, 정자의 그늘이 시원하다. 깊은 오수에 빠져 있는 여인, 참 편하게 보인다.
2014년 제7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수상작 시골 창녀 김이듬 진주에 기생이 많았다고 해도 우리 집안에는 그런 여자 없었다 한다 지리산 자락 아래 진주 기생이 이 나라 가장 오랜 기생 역사를 갖고 있다지만 우리 집안에 열녀는 있어도 기생은 없었단다 백정이나 노비, 상인 출신도 없는 사대부 선비집안이었다며 아버지는 족보를 외우신다 낮에 우리는 촉석루 앞마당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을 보고 있었다 색한삼 양손에 끼고 버선발로 검무를 추는 여자와 눈이 맞았다 집안 조상 중에 기생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창가에 달 오르면 부푼 가슴으로 가야금을 뜯던 관비 고모도 없고 술자리 시중이 싫어 자결한 할미도 없다는 거 인물 좋았던 계집종 어미도 없었고 색색비단 팔러 강을 건너던 삼촌도 없었다는 거 온..
발밤발밤 깔딱거리는 개울의 노래를 지그시 듣는 숲길을 발밤발밤 걷고 있어요 천년 침묵이 흐르는 벼랑바위에 노랑나비 떼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네요 마른하늘 가운데 내 삶처럼 뜬구름이 알쏭달쏭 흐르고 있어요 시월의 산골짜기처럼 삶에 잠기고 싶어요 열렁거리는 대숲에 파랗게 ..
제12회 현대시문학상 공모 시와 문학의 대중성을 강조하면서 태동한 계간 현대시문학사에서는 제12회 현대시문학상 작품을 공모합니다.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모든 역량있는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 공모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작가의 기쁨을 더욱 발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
사람의 앞날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참으로 알 수 없다. 천태산 은행나무 행사에 참석하여, 한 사람을 알게 되고,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오정문학회에 가입하고, 대전문학회 토론회에도 가입하고, 이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모든 것을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순리를 따르면, 누이 같은 지..
계족산 명품 숲길 100리를 걷고 난 후, 그 멋을 흠뻑 맛본 후 보문산 순환임도에 대한 열망이 솟아올랐다. 안영동 돌담 식당에서 즐거운 점심을 들고 1시 반에 출발, 그러나 순환임도는 미완성단계, 출발지점 오월드로부터 10km도 걷지 못하여 길을 내고 있는 공사현장을 만나게 되었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작업인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2016년쯤 완성될 것이라고, 10년이나 젊어 보이는 여인의 살가운 모습을 남겨 두고 등산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되돌아 오는 길, 사정공원에서 오월드까지는 옛길, 십 년 전 자전거로 달렸던 길, 가로수는 길찬 거목이 되었고, 길은 울창한 숲의 터널이 되어 하늘로 뻗어 있었다.
길상호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재학. 청림문학 동인. 2001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오동나무안에 잠들다』『 모르는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 그 노인이 지은 집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
'삼화실-대축' 구간 정보 거리 : 16.9km, 예상시간 : 7시간 0 분, 난이도 : 중 눈부신 지리산, 하늘과 강을 품다 마을도 많이 지나고 논, 밭과 임도, 마을길, 숲길 등 다양한 길들이 계절별로 다른 모습을 하고 반긴다. 봄에는 꽃동산을, 가을이면 황금으로 물든 풍요로운 지리산 자락을 펼쳐 놓..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참석한 문학회, 밤 늦도록 흐드러지게 무르익은 분위기, 귀가 시간을 잊은 술자리, 2시가 넘어 누운 잠자리에서 5시에 뜬 눈, 금빛 잉어처럼 가슴 위로 솟구치는 열망 낮선 곳, 어디론가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집을 떠나 3시간이 지난 후 밟은 땅, 하동군의 하동호 주차장, 지리산 11구간 출발 지점이 흐릿한 시야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지나는 길손을 불러 집을 구경시켜 주는 여인, 집 주인이 아니라 지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