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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숨결
송정마을, 첫걸음부터 오르막 숲길, 편백나무 숲도 나타나고, 짙은 그늘은 따가운 초가을 햇살을 막아주고, 중간에 차가운 얼굴을 내민 계곡물에 땀이 흥건한 몸을 담가 보기도 하고, 술 한 잔 들고 맑은 바람과 짙푸른 숲에 수작을 건네 보기도 하고, 멋진 정자에 걸터앉아 음풍농월하는 시인의 흉내를 내어 보기도 하고, 구간의 끝, 오미마을, 넓게 펼쳐 있는 들판, 운조루 담벼락 밑에 붉게 피어 있는 상사화에 마음을 빼앗겨 보기도 하고
'송정-오미' 구간 정보 거리 : 9.2km, 예상시간 : 5시간 30 분, 난이도 : 중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과 오미리 오미마을을 잇는 9.2km의 지리산둘레길. 구례군 토지면 전경과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농로, 임도, 숲길의 다채로운 길들로 이어져 있다. 숲의 모습 또한 다채롭다. 조림현상과 산불로 깊게 데이고 다친 지리산의 상처를 만난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상처는 더욱 아프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한곳으로 알려진 운조루를 향해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겹다. 섬진강 너머 오미리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봉산이 만드는 풍광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구간별 경유지 송정 - 송정계곡(1.8km) - 원송계곡(1.5km) - 노인요양원(2.4..
시인 문성해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수주문학대상, 해양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 . 시집 창작과비평사 랜덤하우스 창비 등이 있다 자라/ 문 성 해 한번도 만날 수 없었던 하얀 손의 그 임자 취한의 발길질에도 고개 한번 내밀지 않던, 한 평의 컨테이너를 등껍질처럼 둘러쓴, 깨어나보면 저 혼자 조금 호수 쪽으로 걸아나간 것 같은 지하철 역 앞 코튼 판매소 오늘 불이 나고 보았다 어서 고개를 내밀라 내밀라고, 사방에서 뿜어대는 소방차의 물줄기 속에서 눈부신 듯 조심스레 기어나오는 꼽추 여자를. 잔뜩 늘어진 티셔츠 위로 자라다 만 목덜미가 서럽도록 희게 빛나는 것을 틀니 / 문..
추석 명절이 지나갔지만, 아직 무더운 여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오늘 코스는 지난 4개월 간 걸었던 경남 지역에서 전남 지역으로 첫걸음 내딛는 날, 하늘은 맑고 높푸르다. 송정마을 도착해서 차를 세워 놓고 택시를 불러 타고 출발지 가탄으로 갔다. 전북 남원에서 이곳까지 15코스를 지나는데, 대부분 택시비로 미터 요금을 지불했는데, 화개면만 미터기를 켜지 않고 미터 요금의 1.5배 정도로 추산되는 요금을 요구했다. 섬진강 하류가 흐르는 화개장터, 욕망이 춤추는 장터에서 물질을 추구하는 하류의 생각이 물결치는 것일까.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길, 능선을 따라 걷는 숲길, 내리막길, 코스 중간쯤 피아골 입구 은어마을에서 점심을, 따거운 햇살을 가르며 다시 오르막길, 6시간 반에 걸치는 행군도 저무는 석양 속에 ..

최금진 시인 출생충북 제천시 데뷔2001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 학력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졸업 웃는 사람들 웃음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장치되어 있다가 폭발물처럼 불시에 터진다 웃음은 무섭다 자신만만하고 거리낌없는 남자다운 웃음은 배워두면 좋지만 아무리 따라해도 쉽게 안 되는 것 열성인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져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난다 계층재생산, 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려져 있는 어색한 웃음은 보나마나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 자신의 표정을 능가하는 어떤 표정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웃다가 제풀에 지쳤을 때 문득 느껴지는 허기처럼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갖지 않는 웃음은 배가 고프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을 뚝뚝 떼어 이 사람..
제1회 애지문학회 작품상 후보작품 10편 너무 깊은 오해 박소란 세상의 모든 것은 오해로부터 태어난다 오해의 젖을 빨고 간신히 버티는 지진한 아들과 딸, 당신도 결국 하나의 오해다 나는 다만 오해할 뿐 우리는 자주 오해의 술잔을 기울인다 오해의 값싼 장신구를 두른 채 여관을 들락..
제12회 애지문학상 후보작품들 전갈 최금진 독하다는 말, 감사히 받겠다 악전고투의 버릇이니 내 평생 달고 가마 황무지 태생인 것도 잊지 않으마 부모가 선인장이고, 조상이 채찍인 것도 기억하마 태양에서 독을 빌어 왔고, 무덤을 갑옷처럼 몸에 껴입었으며 양 훅을 날리는 알몸의 권투..
아이를 죽이는 ‘그늘의 정부’ ‘그늘의 정부(情婦)’인 박소란을 추천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발성과 화법이 나와 다르다는 것. 어딘지 모르게 활달한 진술을 따라가는 재미를 음미하다가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의미는 도망가고 그냥 어두운 감각..
김은주 시인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술빵 냄새의 시간> -2009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 ..

박 강 시인 197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쳤다. 2007년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13년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 《박카스 만세》를 출간했다. 첫 시집 《박카스 만세》의 수록작은 다음과 같다. 펭귄 폭설 우루사를 먹는 밤 벨로시랩터 철학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이상한 염색 이불 속의 마적단 서툴고 길게 말하는 것은 블루스의 조건 너와 나의 국토대장정 아랫목의 순례자들 절차탁마 발기만성 박 대리는 어디에 크레딧 건기 카운트다운 개원 위생의 제국 쇄빙 풍툼 씨의 사진관 스콜성 부지깽이 소셜 클럽 바이킹 누아르에 대한 짤막한 질문 쨍하고 해 뜰 날 오도독 누룽지 봄날은 간다 렉터 박사의 처방전 고물 드럼을 꺼내다 박공지붕 복원건축공법 폐원 물음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