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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숨결
홍매화가 피었다. 친구가 보내온 대학시절의 낡은 사진한 장, 교련복을 입고 봄 가을을 보냈었지. 나룻배를 타고 건너간 뚝섬 봉은사 인근, 막걸리 잔으로 젊음을 들이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포근한 산행을 했다. 금년에 바쁜 일상에 시간을 잃어버린 아내와 함께 모처럼 편안한 산길을 걸었다.
환한 봄빛이 감도는 산자락 봄꽃 한송이가 적막의 문을 열고 묵묵이 다가와 억새들 사이에 앉았다 잿빛 얼굴에서 피어나는 웃음꽃, 젊음이 산등성이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힘차게 뛰어넘고 있었다.
오전 11시, 대청호반, "메밀꽃 필 무렵" 식당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 역사적인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을 TV를 통해 가슴에 담았다.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어두운 역사의 한 쪽이 넘어가고 있었다.
못난, 꽃의 운명 마음을 비우는 것은 엎질러진 물처럼 나에게는 죽음을 택하라는 것 욕망은 꿈을 키우는 마법의 손길 불타는 욕정은 창조의 원동력 개털보다 못난 자여 쥐꼬리보다 못한 자여 이글거리는 탐욕의 불꽃이 사그라질 때 낮은 휘청거리며 상여처럼 다가오고 밤은 백치처럼 요란하게 우는가 불붙은 마음이 창고의 짐처럼 줄어들면 창백하게 빈 곳으로 암담한 어둠이 누룩뱀처럼 기어들지 비우는 것보다 채우는 것이 화려하게 피어나려는, 개똥밭에 구르는 못난 꽃의 운명이지 --열린시학 82호(2017년 봄)--
가을의 농단 복고풍 맥시 바람이 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휘젓고 다니는 십일월 살얼음판처럼 흐린 하늘 그윗곧 지붕 위에 휘갈겨 쓴 흘림체, 등장할 옷맵시는 갖두루마기 핏빛으로 달아오른 한물간 유행이 무대 아래로 어지럽게 쏟아지고, 휘몰아치는 비질에 밀려나는 색칠한 어릿광대의 바지저고리 패션쇼 주춤거리는 돌쟁이 발걸음 잿빛 길목 웅덩이에 앓는 소리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처럼 새어 나오는데 사람들은 돌덩이처럼 지나가고 한 무리 회오리바람 탈취한 세력권을 살피는 사자 떼처럼 훑고 간다 싸늘한 하늘에 빙산처럼 떠 있는 구름 장막처럼 깊게 드리운 그림자 암담한 어둠 속을 배회하는 자여 어지러운 것 모두 불살라 버리는 불길은 밤의 어둠 속에서 더 아름답지 않은가 바람 자는 들판에서 더 타오르지 않는 불씨를 재 속에 ..
재 대전 시에 회원과 길상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