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농단
복고풍 맥시 바람이
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휘젓고 다니는 십일월
살얼음판처럼 흐린 하늘
그윗곧 지붕 위에 휘갈겨 쓴 흘림체,
등장할 옷맵시는 갖두루마기
핏빛으로 달아오른
한물간 유행이 무대 아래로 어지럽게 쏟아지고,
휘몰아치는 비질에 밀려나는
색칠한 어릿광대의 바지저고리 패션쇼
주춤거리는 돌쟁이 발걸음
잿빛 길목 웅덩이에 앓는 소리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처럼 새어 나오는데
사람들은 돌덩이처럼 지나가고
한 무리 회오리바람
탈취한 세력권을 살피는 사자 떼처럼 훑고 간다
싸늘한 하늘에 빙산처럼 떠 있는 구름
장막처럼 깊게 드리운 그림자
암담한 어둠 속을 배회하는 자여
어지러운 것 모두 불살라 버리는
불길은 밤의 어둠 속에서 더 아름답지 않은가
바람 자는 들판에서
더 타오르지 않는 불씨를 재 속에 묻으며
다시 피어나
어둠을 태워 버릴 불길을 꿈꾼다.
--(시와시학 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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