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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숨결
천년의 그늘 천태산 영국사 앞 찬바람에 노란 장삼 자락 너붓거리며 부처처럼 서 있는 고목 한 그루 어린애, 젊은이, 늙은이 다 모아 놓고 천년 고행에 얻은 깨달음을 설파하고 있다 바람의 손길에 물결치는 황금빛 너울은 그가 살아온 이력 산사의 문 두드렸던 수많은 비구승 미혹의 세..
2013 천태산 은행나무 詩祭 걸개 시화전 및 시 모음집 원고모집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은 고귀한 생명을 내 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나아가 자신과 이웃, 대자연 속 뭇 생명의 평화를 지켜내며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2013 천태산 은행나무..

대전시 하기동에 있는 전원 레스토랑에서 애지 문학회, 반경환 주간, 김지순 총무국장, 이형권교수(충남대학), 황정산 교수(대전대학), 이돈형 시인들과 함께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함께 했다. 파스타와 피자, 스테이크 등 요리의 맛도 좋았다. 식당 주변에 심어 놓은 블루베리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가 싱그럽게 익어 가고 있었다. 달콤하고 향그러운 맛, 일품이었다. 모처럼 찍은 사진이 흐려 아쉬었지만, 못생긴 사람은 사진이 흐릴 수록 좋다.
하이퍼시(hyper poetry) 이해 崔進淵 1. 하이퍼시란 용어와 개념 <시문학>지는 몇 년 전부터 하이퍼시라는 새로운 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참여시인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이퍼라시’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심 상운은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에 관한 시론을 중심..
인식의 혁명 문 덕 수(시인, 예술원회원) 1. 거의 1세기가 지난 한국시는 현재 한계의 벽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벽의 정체는 시인마다 달리 보일지 모르나, 지각 있는 시인이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언젠가 “ 시는 언어 예술이면서 언어를 넘어 선다”고 말한 바 있다. 언어를 넘어 선다는 뜻은 지각 레벨에서의 사물의 인식 문제이다. 사물에 대한 지각(知覺)은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 유럽의 근대적 자아의 표징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일시점(單一視點)은 예술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그 뒤를 이어 단일 시점이냐, ‘복수로서의 나’를 공관화하는 다시점(多時點)이냐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시점은 피카소의 에게서 시도되었고, 이..
이 시론은 1966년 3월호에 발표된 시론으로서 한국 현대시에 '내면세계'라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상에서 해방된 '순수 이미지의 세계'라는 창조적 영역을 개척한 시론이다. 21세기의 한국 현대시에서 '하이퍼시' 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시론이라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 된다. 내면세계의 미학 문 덕 수 (시인, 예술원회원) 이미지의 시대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라고 한다. '추상예술의 모험'의 저자인 미술 평론가 미셸 라공은 말의 시대가 있은 후 기술記述의 시대를 거쳐 우리는 오늘날 새로운 시대, 즉 이마쥬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한 바 있다. 범람하는 텔레비전, 영화, 간판, 사진 등 우리 시대의 전반을 ‘이미지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시라는 특수 분야에 한정해서 보아도 현대..
심상운론 -‘하이퍼 시 14인집’(시문학 2010.11)을 중심으로 문덕수 (시인, 예술원 회원) 1. 심상운(沈相運)은 학업(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을 마친 후 을 통해 등단했다(1974). 대학 시절의 친구들인 신세훈, 배정웅과의 3인 시집인 (한겨레, 1978),(시문학사, 1981), (시문학사, 2002)을 상재했는데, 초기 작품에는 역사의식이 담긴 관념이 짙은 편이었지만, 모더니즘의 영향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새로운 전위시 운동에 눈 뜬 때는 2006년 무렵인 것 같다. 사실상 하이퍼 시 운동의 우리시단의 최초의 시론집으로 볼 수 있는 (푸른사상, 2010)의 서문에 의하면, 오남구 주도의 의 동인지의 글 「디지털리즘」과 문덕수의 「사실, 생명, 현장」 등의 글에서 조금 충격을..
사물적 가능성과 상상적 가능성 문 덕 수 1. ‘돌멩이’는 돌멩이지 사회주의나 휴머니즘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들이 돌멩이를 돌멩이라는 ‘물리적 존재’로 보지 않고 ‘관념적 존재’로 보려고 한다.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관습이 되어 있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정말로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테이블을 테이블로, 꽃을 꽃으로, 구름을 구름으로, 컵을 컵으로 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그렇게 보지 않고, 무언가 그 사물 뒤에 있는 인생이나 문화나 역사나 관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관념화 하는 것은 전혀 그 사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리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사상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보려고 한 시인은 정지용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지용(鄭芝溶)은 한국 이미지즘의 효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