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모음

봄볕을 굽다

연안 燕安 2011. 3. 18. 07:53

봄볕을 굽다

 

                                                 고영

 

봄볕 좋은 날

네 식구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숯불 화덕에 석쇠를 걸쳐놓고 꽃삼겹살을 굽습니다

봄볕에 익은 아이의 볼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숯불 속에도, 꽃삼겹살 위에도

개나리 노란 꽃잎이 기분 좋게 피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담장을 타고 마을로 퍼지면

몸이 달은 동네 개들은 울대가 꺾이도록 짖어대겠지만

우리 안 돼지들은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 가겠지요

집짐승들의 사소한 소란 속에 봄볕은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내 집 마당에 평등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꽃삼겹살 위에 봄볕이 지글거리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봄날은 얼마나 무료했을까요

살가운 봄볕에 구워진 자리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지글거리는 변두리 봄날

식구들 얼굴에 핀 꽃잎만 따먹어도

나는 배가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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