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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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조새 外 / 강태규

연안 燕安 2013. 2. 15. 00:51


시조새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이상의 ⌜날개⌟ 중에서


나는 믿는다

날개가 생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14층 난간을 오르겠는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설산 빙벽을 오르겠는가


새는 사람의 아득한 동족일 것이다

알로서 태어난 적도 있을 것이며

봉황, 주작, 금계, 비익조, 파랑새, 선학,

솟대에 오른 새들까지도 같은 시원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제 몸의 일부를 알에게 내어주듯

제 몸 전부를 바람과 새들에게 내어주는

섬나라 부족이나 히말라야 부족을 떠올린다


날다가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세발 달린 마지막 까마귀가 화살에 꽂힐 때까지

계속 날아오르게 하는

먼 기억들의 호명이라고

나는 믿는다


난간으로 오르는 것도

설산 빙벽으로 오르는 것도

부엉이 바위로 오르는 것도

망루로 오르는 것도

타워크레인으로 오르는 결단 까지도


나는 믿는다

내일 돋아날 유물론 ‘날개’를






시가 오지 않는 날은



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는 위안이라든가

안식을 비켜서 칠흑 같은 산을 걷고 싶다


어제의 초록은 환시일지라도

별빛들의 그늘이라도 거느려보고 싶다


숲가지에 빗겨 내리는 달빛도 좋아

날짐승이 제 고향말로 짝을 부르고

물소리 미끄럼타듯 제 골짜기말로 부풀어 내릴 때

눈을 열고 그들과 나의 모태어에 귀 기울일 것이다


킬로만자로를 찾아가는 헤밍웨이 같고

알프스를 오르는 돌화살에 다친 청동기 전사처럼

벼랑 같은 다짐으로,

‘폴레 폴레, 하쿠나 마타타’

천천히 가면 문제가 없다는 스와힐리어 주문을 욀 것이다


저잣거리 고향 잃은 사람의 말들

귀신도 못 알아들어

하늘에 닿을 소리 없는 듯도 하여

윤중호 시인처럼 귀신도 펑펑 울 노래 한 번 불러도 보고

이성선과 이성부의 산 노래 듣고도 싶어


사원에 머무는 목탁소리의 눈부신 비상飛上 속에서

사원 밖의 나는,

쓰임새 없는 말만 중얼거린다


시타래 도무지 풀리지 않는 날은

가야지, 산으로




월간 우리시 2012.10월호  39-42쪽

 

출처 : 시에/시에문학회
글쓴이 : 무궁화(강태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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