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지하철에서 만난 여자 본문
지하철에서 만난 여자
-물결의 안팎
장승리
역삼동을 가려면
이리로 가는 것이 맞나요
그렇다는 대답을 서너 차례 듣고서도
또다시 묻는 여자
역삼동을 가려면 이리로 가는 것이
맞나요
검은 뒤통수들이 뱉어 놓은 가래침이
여자 얼굴 위로 흥건하다
물결이 될 수 없어 아픈 여자
바람 한 다발
꺾어 그 품에 안겨 주고 싶은데
출렁이고 싶어
칼 한 자루 손에 쥐고
이리저리 제 몸을 헤집어도
붉은 빗방울 하나
제
목을 적시지 못하는 여자
고여 있는 제 몸 더러운 물도
양 손으로 떠올려 놓고 보면
투명한 것을
더러운 투명함만
헤아리고 또 헤아리다
결국 제 가슴에 강물을 포개 놓고
바느질을 시작하는 여자
안 땀, 겉 땀
흰 이빨 훤히
드러내며
강물 위로 번지는 백치의 웃음이
내 입술을 억지로 잡아당긴다
1975년 서울에서
출생
1997년 한세대 신학과 졸업
2000년 서울여대 사회사업학과 졸업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
[감상]
사람의 물결로 가득찬 지하철안의 백치여인에게서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또 다른 물결이 이는
것을 본다.
물결의 안팎도 따지고 보면 겉물결,
속물결 다를 리 없는 것을,
파도에 섞어치고 흐르다 보면 이내 같은 물결인
것을
물결이 되고 싶어
강물이 되고 싶어
가슴에 강물을 포개놓고서 혼자서 출렁이는 여자,
세상과 어울리고 싶어 안
땀, 겉 땀
세상의 씨줄 날줄이 되고 싶은 여자,
그러고도 끝내 물결이 될 수 없어 아픈 그 여자,
[양현근]
'현대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물때를 읽다/신덕룡 (0) | 2013.02.20 |
---|---|
악어를 위하여 (0) | 2013.02.17 |
[스크랩] 내일이 어버이 날이람서요?/김용길 (0) | 2013.02.15 |
[스크랩] 시조새 外 / 강태규 (0) | 2013.02.15 |
[스크랩] 핑크 펄 23호—김영애/권순진 (0) | 2013.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