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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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다 속에 잠든 고래가 된다 외 1편(2010 우리시 8월호)/이현채

연안 燕安 2013. 2. 15. 00:48

바다 속에 잠든 고래가 된다 외 1편

 

                                                        

                                                          이현채

 

 

                                           

  악세레이터를 밟으며 서해로 간다 

  언제 들어도 좋은 칸소네, 라디오에서는 밀바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무영(無影)으로 떠도는 바람을 따라 악세레이터를 밟는다 장롱 속에서 반지잠을 자다가 멀뚱한 눈으로 방부제 가득한 생각들을 되짚으며 불협화음이나 일으키는 머릿속에 든 잡동사니들, 잡동사니들을 버려야 한다

 

  가슴 속에 박혀 있는 수천 개의 못, 그 못들을 하나 둘씩 뽑아

  차창 밖으로 날려 버린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황금 첨탑 아래 블루칼라들, 그 블루카라들은 하루의 끼니를 때우기 위해 허름한 국밥집을 찾아 든다 일당으로 받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지갑 속에 넣으며 처자식의 눈빛을 크로키 한다 자식들의 꿈이 비에 젖는 부스러기 말들을 늘어놓는다

 

  꿈이 비에 젖어 강물 위를 걷고 있다

  과거에서 온 사람들이 비에 젖는다

 

  우산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연인들의 발걸음은 갈매기의 나래 깃, 냄새 없는 시간 속으로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종신형을 받았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악세레이터를 밟는다   등대의 불빛에 걸린 울음을 안고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잠든 고래가 된다

 

 

 

 

 

잡지 읽는 계절   

                      

            

여드레 아흐레 지나 잡지가 오면

노랑나비 흰 나비

검은 고무신 꽃신 신는다

 

잡지 속으로 여름이 아롱아롱

맺힐 때

토란 대를 들고

네잎 클로버를 찾는다

 

지우개로 지워 버렸던 사연들

가끔은

텔레비전 속으로 재생되지만

 

잡지를 넘기고 넘기니

그 사연들은

더욱 더 클로즈업되면서 

 

토란 대를 따라

물방울

뚝,

뚝,

듣는 여름

 

여름이

달콤 쌉싸름하게 지나간다

 

 - 2010 월간우리시 8월호

 

 

 

출처 : 애지문학회
글쓴이 : 이현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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