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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품

펭귄마을 시냇가 - 2017 여름

연안 燕安 2017. 6. 1. 22:10

    펭귄마을 시냇가
    가로수 타오르는 늦가을에 시냇가 옛길을 걷는다 기억의 시루 안 층층이 쌓인 켜에서 팔락거리는 마른 나뭇잎 늘어진 나뭇가지에 등불처럼 매달린 잎 하나 뜯어 씹어 본다 위장에서 목구멍까지 아랫배에 고였던 열기가 뜨겁게 올라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 무거운 짐 지고 먼 거리를 걸어온 듯 눈앞이 가물가물 흔들린다 허기진 위장이 꼬르륵거리는 한낮 희뿌연 연기 실오리처럼 피어오르는 검불 덩이 냇물에서 건져 올린 미꾸라지 노릇노릇 익어가는 더럽고 어수선한 냇가가 환장하게 그리워지는 것일까 시내처럼 흐르던 시절이 있었는지 정말 답답할 때면 옛집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골목 담벼락과 텃밭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세월의 속삭임에 귀를 세우고 아무도 뒤돌아보려 하지 않는 나의 냇가를 뒤뚱뒤뚱 펭귄처럼 걷는다. --불교문예 77호(2017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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