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노을이 흐르는 들판 -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본문

발표작품

노을이 흐르는 들판 -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연안 燕安 2016. 9. 4. 00:46


    노을이 흐르는 들판 구렛들 가로질러 돌개울 따라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 온종일 수십 리 화선지에 힘차게 그림을 그리는 그곳에 가면, 낡은 버스 정류장 먹거리와 음료수 줄느런히 늘여 놓은 구멍가게 안락의자에 여왕처럼 걸터앉아 노란 오이꽃을 깨무는 여인 탈탈거리는 경운기 위 정장 차림의 노신사 연단의 후보처럼 중절모 벗어 들고 미소를 보내오고 거름 내 절어 있는 길가 부르릉, 부르릉, 검은 부츠 사이에 낀 오토바이 검정 옷차림 은빛 수염의 사내 젊은 날의 흔적을 나부끼며 희미한 미소를 띠고 묵화처럼 서 있는데, 도시를 지나 시냇물처럼 모여든 사람들 촘촘한 세월의 티끌 자국 지우며 산 그림자 내리덮은 화폭에 저녁 어스름 멋지게 덧칠하고 있는데, 낡은 머리에 글자 구겨 넣으며 빈 종잇장에 쓰디쓴 몇 줄 써 놓고 자위하는 나에겐 꾀죄죄한 모습마저 그려 넣을 화폭이 없다.
      --시에티카 15(2016년 하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