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뒷걸음질 - 시와사람 80호(20주년 기념특집) - 2016년 여름 본문

발표작품

뒷걸음질 - 시와사람 80호(20주년 기념특집) - 2016년 여름

연안 燕安 2016. 7. 14. 21:24
 
    뒷걸음질 사르륵 줄어드는 둥근 창문의 조리개 구멍 닫히는 공간의 어스름 속에서 한 가닥 빛마저 사라지고 나는 문밖으로 유령처럼 튕겨 나간다 무젖은 어둠 속에서 긴 세월 비바람에 비틀어진 산속 오두막처럼 낡은 집 검게 멍울진 손길 누룩뱀처럼 다가오고 몸무게를 상실한 나는 가랑잎처럼 훌쩍 밀려난다 머물던 집은 아직 떠날 만큼 낡지 않아 짜릿짜릿한 전율은 악어 입처럼 까마득한 어둠의 문 앞에서 움씰 뒷걸음치며 가슴속에서만 어렴풋하게 그려 보던 에이는 아픔을 겪어 보는 거야 다가올 때처럼 잠자코 떠나 버린 안갯속 고요가 내려앉는 콘크리트 바닥 형광등 불빛에 보석처럼 빤작이는 깨진 안경알의 파편 조각들 이보다 더 눈부신 빛은 본 적이 없어 한순간 반짝임에 낯선 땅을 밟는 듯한 석양은 참 싱그러운 것 같아. --시와사람 80호(20주년 기념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