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늙은 개의 죽비 -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본문
늙은 개의 죽비
하루도 쉼 없이 걷는 뒷산 오솔길
깡충대는 늙은 개
생각에 잠긴 나를 읽는 순간
길을 벗어나 초록빛 속으로 사라지는 흑점
내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린다
땅거미 발밤발밤 기는 저녁
둥지를 찾는 새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나타나
더부룩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바람 타고 실려 온 한 가닥 역겨운 냄새
목과 머리에 똥을 덕지덕지 바르고
새카만 얼굴이 빙그레 웃고 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구린내를 마시며
털 사이에 찐득찐득 달라붙은 똥 덩이
내 몸에서 떼어 내듯 맨손으로 씻어낸다
물기를 터는 순간 튀기는 똥물
눈앞이 팽그르르 돈다
요지경 세상 속에서 삶은 새벽 꿈이라고
걱정을 가불하지 말라고 늘 말하던
내가 벌레의 숨소리마저 얼어붙은 한갓진 산속에서
덧없는 상념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나는 똥물 벼락을 맞아야 한다.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수정>
개의 죽비
하루도 쉼 없이 걷는 뒷산 오솔길
목줄 풀려 깡충대는 개
잡생각에 한눈파는 순간
길을 벗어나 초록빛 속으로 사라지는 흑점
내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리고,
땅거미 기는 저녁
바람 타고 실려 온 한 가닥 역겨운 냄새
더부룩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새카만 얼굴이 빙그레 웃고 있다
구린내에 숨을 멈추고
목과 머리 털에 찐득찐득 달라붙은
똥 덩이를 맨손으로 떼어 내듯 씻어낸다
갑자기 몸을 흔들어대며 물기를 탈탈 턴다
눈앞이 팽그르르 돈다
요지경 세상 속에서 삶은 새벽 꿈이라고
걱정은 가불하지 말라고 늘 말했는데,
벌레의 숨소리마저 얼어붙은 한갓진 산속에서
덧없는 상념의 소용돌이에 빠져
똥물 벼락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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