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늙은 개의 죽비 -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본문

발표작품

늙은 개의 죽비 -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연안 燕安 2016. 9. 4. 00:40

늙은 개의 죽비

하루도 쉼 없이 걷는 뒷산 오솔길

깡충대는 늙은 개

생각에 잠긴 나를 읽는 순간

길을 벗어나 초록빛 속으로 사라지는 흑점

내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린다

 

땅거미 발밤발밤 기는 저녁

둥지를 찾는 새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나타나

더부룩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바람 타고 실려 온 한 가닥 역겨운 냄새

목과 머리에 똥을 덕지덕지 바르고

새카만 얼굴이 빙그레 웃고 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구린내를 마시며

털 사이에 찐득찐득 달라붙은 똥 덩이

내 몸에서 떼어 내듯 맨손으로 씻어낸다

물기를 터는 순간 튀기는 똥물

눈앞이 팽그르르 돈다

 

요지경 세상 속에서 삶은 새벽 꿈이라고

걱정을 가불하지 말라고 늘 말하던

내가 벌레의 숨소리마저 얼어붙은 한갓진 산속에서

덧없는 상념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나는 똥물 벼락을 맞아야 한다.

 

--시에티카 15 (2016년 하반기)--

 

<수정>

개의 죽비

 

하루도 쉼 없이 걷는 뒷산 오솔길

목줄 풀려 깡충대는 개

잡생각에 한눈파는 순간

길을 벗어나 초록빛 속으로 사라지는 흑점

내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리고,

 

땅거미 기는 저녁

바람 타고 실려 온 한 가닥 역겨운 냄새

더부룩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새카만 얼굴이 빙그레 웃고 있다

구린내에 숨을 멈추고

목과 머리 털에 찐득찐득 달라붙은

똥 덩이를 맨손으로 떼어 내듯 씻어낸다

갑자기 몸을 흔들어대며 물기를 탈탈 턴다 

눈앞이 팽그르르 돈다

 

요지경 세상 속에서 삶은 새벽 꿈이라고

걱정은 가불하지 말라고 늘 말했는데,

벌레의 숨소리마저 얼어붙은 한갓진 산속에서

덧없는 상념의 소용돌이에 빠져 

똥물 벼락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