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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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잘 죽은 나무 / 마경덕

연안 燕安 2013. 2. 12. 21:01

 

 

   잘 죽은 나무/마경덕


   나무의 소원은 잘 죽는 것.천수를 누리고 고사목이 되느니 잘 죽어 다시 태어나는 것, 부활은 모든 나무의 꿈이다.
  다발 다발 책으로 묶인 뒷산 산닥나무, 고집 센 산딸나무 도마는 온몸에 칼자국이다. 비염을 앓던 오동나무주유소 오동나무는 소원대로 거문고가 되었다. 얼결에 벼락맞은 대추나무도 목도장으로 태어났다. 나무들의 금기는 고로롱팔십. 결코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는 것.
  때 맞춰 잘 죽은 나무는 반드시 소원을 이룬다. 말구유가 된 나무는 자다 깨어 빈 구유에 아기를 누이고 깍듯이 큰 절을 받았다. 가시나무는 뜻밖에 면류관이 되었고 버려진 나무기둥은 일곱 번 쓰러지며 마침내 골고다 언덕을 올랐다.
  죽은 나무들이 두려워하는 건 못 박힌 목수의 손. 흰 속살을 꺼내 반죽하듯 나무를 빚는 목수는 톱과 망치로 죽은 나무의 미래를 결정한다. 전직이 목수인 마구간의 사내도 손에 깊은 못자국을 남겼다. 평생 못을 치다 죽은 아버지의 손에도 못이 박혀 있었다.
  이천 년 전 갈보리산에서 피 흘린 그 나무. 사흘만에 부활한 '가장 잘 죽은 나무', 두툼한 족보 속에서 걸어나온다.

출처 : 애지문학회
글쓴이 : 강병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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