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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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걸음 / 이정록
전깃줄에 새 두 마리
한 마리가 다가가면 다른 한 마리
옆걸음으로 물러선다 서로 밀고 당긴다
먼 산 바라보며 깃이나 추스르는 척
땅바닥 굽어보며 부리나 다듬는 척
삐친 게 아니다 사랑을 나누는 거다
작은 눈망울에 앞산 나무 이파리 가득하고
새털구름 한올 한올 하늘 너머 눈 시려도
작은 몸 가득 콩당콩당 제짝 생각뿐이다
사랑은 옆걸음으로 다가서는 것, 측근이라는 말이
집적집적 치근거리는 몸짓이 이리 아름다울 때 있다
아침 물방울도 새의 발목 따라 쪼르르 몰려다닌다
그중 한 마리가 드디어 야윈 죽지를 낮추자
금강초롱꽃 물방울들 땅바닥을 적신다
팽팽한 활시위 하나가 하늘 높이
한 쌍의 탄두를 쏘아올린다
『정말』이정록 시집,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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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정물화를 보고 있다. 아니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화가가 붓으로 이 그림을 그린다면 이처럼 정밀하게 묘사를 할 수 있었을까? 시가 주는 마술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선하게 다가오는 그림, 문자로 그린 그림이기에 눈을 감고도 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겠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동네 여자 아이랑 논두렁에 앉아 서로 다가 갈 듯 말듯 망설이는 그림이 아닌가. 한쪽이 다가가면 한쪽이 조금 비켜가고 한쪽이 비켜 가면 다른 한쪽이 조금 다가가는, 그러다가 더 쑥스러워지면 나비라도 잡는 척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던……
한 쌍의 새가 사랑을 이루었는지 금강초롱꽃 물방울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팽팽한 활시위가 그들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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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학 / 경북 문경 출생. 2011년 『애지』로 등단. 시집으로는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말』 『눈 시리도록 보고픈 사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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