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스크랩] 센티멘탈 쟈니/박인환 본문
센티멘탈 쟈니
박인환
주말 여행
엽서......낙엽
낡은 유행가의 설움에 맞추어
피폐한 소설을 읽던 소녀
이태백의 달은
울고 떠나고
너는 벽화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숙녀
카프리 섬의 원정(園丁)
파이프의 향기를 날려 보내라
이브는 내 마음에 살고
나는 그림자를 잡는다
세월은 관념
독서는 위장
그저 죽기 싫은 예술가
오늘이 가고 또 하루가 온들
도시에 분수는 시들고
어제와 지금의 사람은
천상유사(天上有事)를 모른다
술을 마시면 즐겁고
비가 내리면 서럽고
분별이여 구분이여
수목은 외롭다
혼자 길을 가는 여자와 같이
정다운 것은 죽고
다리 아래 강은 흐른다.
지금 수목에서 떨어지는 엽서
긴 사연은
구름에 걸린 달 속에 묻히고
우리들은 여행을 떠난다
주말여행
별말씀
그저 옛날로 가는 것이다
아 센티멘탈 쟈니
센티멘탈 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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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갑자기 왜, 이 시가 떠오른 것일까
참 오래전에 그냥 좋아서 그냥 슬퍼서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엔 그냥이라는 것이 통했다.
아니 지금도 나는 그냥 좋은 시가 좋다.
시시콜콜 따질만한 능력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조금 무지한 것이 시를 읽고 마냥 즐길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기분도 든다.
무슨 궤변인지 모르겠으나.
다소 관념적이긴 하나 박인환의 시를 읽으면 늘 머릿 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당신도 벽화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숙녀가 떠오르지 않는가.
혹은 수목에서 떨어지는 엽서를 받아서 읽고 있진 않는가.
그 수목 아래로 눈이 쌓이고 쌓여 볼수 없다 한들
설경이 담긴 엽서를 받아 읽으며 하염없이 고요를 불러올 수 있는 이 겨울이 좋다
외로워서 좋고 센티멘탈 해서 좋고
눈보라에 추위에 갇혀 있을 때 나를 만날 수 있어 좋다.
구름 속에 걸린 달처럼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볼수 있는....
이 겨울에 그대들은 무얼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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