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성은주 본문
포말하우트*
성은주
1
지하도 계단 앞에 쪼그려 앉는
할머니 곁에 폐지 실은 수레가 있다
그림자도 이글대는 한낮
햇볕이 쓰다듬고 있는 시루떡을 먹는다
목마른 주머니는 물 원치 않았다
채워지지 않은 허기 달래고 있을 뿐,
녹슨 하루 체하지 않을까
나는 그늘만 골라주고 싶었다
할머니 성성한 머리카락 담아 올린
나비 모양 큐빅 핀은 부식 중이다
군데군데 별이 빠져나가고
군데군데 가족도 빠져나갔다
2
허공에 외로운 물고기 한 마리
우, 우, 울어대도 새벽까지 혼자였다
수많은 행성 사이로 흘려보낸 눈물
(너무 울어 목이 부은 것 같아
소리쳐도 먼지처럼 하얀 바람만 올라와)
물고기 입은 검버섯 돋아나고
비릿한 아가미만 헐떡이다가
달빛으로 가득 차 홀로 붉어졌다
더는 지켜볼 근황이 없으므로
빈 물병 되어 남쪽 깊이 잠긴다
언제 저토록 휘황하게 울어보려나
뼈마디를 조각조각 곱게 뿌린 밤이다
* ‘물고기의 입’이라는 뜻을 가진 외로운 별
우측보행
길을 찾기 위해 때때로 길을 잃어야 할 때가 있었다
슬픈 경계로 진공 된 간격마다 너의 부재를 알리는 높은음자리표, 기적을 만드는 터널과 같았지
가까워지고 싶어 이름을 버리던 날
출렁이는 실금에 발맞춰 보았지만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북서쪽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다 보면, 우리 서로 마주할 수 있을까 언제쯤 우연처럼 길을 벗고 섞일 수 있을까 보행 가능한 방향에서 한걸음, 한걸음, 물풀로 찍어내듯 걸었지 발자국은 낮은 목소리로 농락하기 시작했어 보고 싶어라 보고 싶어라
감추고 싶어 낯선 노래를 부르거나
벗어나고 싶어 바람을 길게 늘어뜨리거나
기억하고 싶어 흙을 한 줌 주머니에 담아보거나
누가 내 발 앞에 뾰족하게 돋아난 화살 무늬 좀 떼어줄래
죽을 자리를 골라주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거든 자꾸 오른쪽이어서, 자꾸 밀어내서, 자꾸 집착하게 만들어 숨 쉴 수 없잖아
이제 막 썩기 시작한 바나나 껍질은 흑백필름으로 변해가고
우리는 그곳으로 몰려드는 벌레들과 충돌했지
살고 싶어 백통의 메일을 받던 날
아침은 아침을 낳고
물로 그린 그림처럼 세상이 사라져 갈 때
모퉁이는 모퉁이로 번져갔다
눈을 감으면 좌측에 네가 서 있다가,
서 있었다가 사라져
꿈속에서 난 아무 말 하지 못했지
피상적으로 쏟아지는 사람들 속에서 스칠 뿐, 그렇게 우린 우측으로만 구부러지고 있어 서로의 신호를 잃어버리며 살아가네
성은주
충남 공주 출생.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에』201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