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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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모음

공원

연안 燕安 2012. 1. 31. 21:55

· : 하늘공원
· 저자(시인) : 권달웅
· 시집명 : 달빛 아래 잠들다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9
· 출판사명 : 모아드림
나지막한 산이 하늘을 품었다.
저 산자락을 싸락눈처럼 뒤덮은
하얀 억새꽃,

그 산 아래 변두리 달동네
옥탑방에서 새어나오는
봉선화 손톱물 같은
불빛이 아슴푸레하다.

하얀 억새꽃이
강을 건너가는 철새울음처럼
바람에 눕는다.
저 하늘 한 구석에
먼 길을 걸어온 내가 쉴
작은 의자 하나 놓였다.

 

· : 공원엔 작은 산이 있고
· 저자(시인) : 유소례
· 시집명 : 제1집 <어머니의 깃발>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1년
· 출판사명 :
공원엔 작은 산이 있고

- 유소례 -

공원 뒷산을 바라본다

둔한 몸을 부려놓은 곰이다

마음이 있는 우직한 짐승을
밤의 입이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고 있다

곰의 귀와 목 허리와 꼬리에
연줄을 묶어놓고
가다가도 돌아서는 내 안의 연,
어슬어슬 한기 도는 밤의 휘장을 두르며
내일 또 만날 것을 약속한다

내 세포에 꽃이 피는 날은
해가 되고
까치가 되고
바람이 되어서
네 척추를 간지럼치며
허리를 밟고 연가를 불러 본다

가슴 무너지는 비구름의 소낙비도
살 속에 삭여낼 수 있는 것은
묵묵한 곰, 너 때문이야

의연한 너는 어깨 위에
오늘도 햇살을 짊어지고
나를 무등 태우고...

 

· : 휴일의 도시공원
· 저자(시인) : 박태강
· 시집명 : 마음의 빗장을 열고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8년4월
· 출판사명 : 문예춘추(씨알의 소리)
깨끗한 개울 맑은 물 흐르고
아담한 호수에는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춘다

호수주변 나무그늘
수많은 사람 저녁바람 맞으려
벤치마다 가득가득

더위 피해 온 사람
손잡고 나온 연인
사랑 노래 부르며 더위 식힌다

울창한 숲속
젊은 사랑 꽃피고
미류나무 매미노래 흥 돋구니

마중나온 구름
사랑 시샘
소낙비 솓아 사랑을 확인하네.

 

· : 자유공원에서
· 저자(시인) : 정경해
· 시집명 : 선로 위 라이브 가수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7
· 출판사명 : 문학의 전당
자유공원*에서

정경해


자유공원 벤치에 따뜻한 햇볕이 내린다
노인 셋이 빈 자루로 주저앉아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지낸다며
궁시렁거렸지만
멀리 월미도 앞바다에 떠 있는 배 몇 척은
발이 몹시도 시려 보인다

햇볕은 자유공원 겨드랑이까지
파고들어 입김을 불어대며
종종대는 참새의 발목을 붙들고
산책로 옆 포장마차에는
어묵 국물의 구수한 웃음이 피어오른다
뱃속은 때맞춰 알람을 울려대고
눈치 없는 군침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데
훌쭉한 볼을 붉히며 말이 없는 주머니

힐끗힐끗 포장마차 앞을 스치는 등 뒤로
노인 하나 일갈한다
"젊은 놈이 대낮에…"
가슴에 큰 파도가 일렁이며 한기가 스민다
욱신거리는 등
꽉 쥔 주먹 사이로 땀이 흘러내린다
언제부터인가, 자유공원을 오르는 것이

공원을 내려가며
빈 발자국을 채울 그날을 그려본다
이른 아침 도심을 달리는
힘찬 그날을




*인천광역시에 있는 공원으로 인천시가와 인천항만의 풍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응봉산 서부 전체가 자유공원이다.

 

· : 고인돌 공원
· 저자(시인) : 문인수
· 시집명 : 쉬!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6
· 출판사명 : 문학동네
고인돌 공원

문인수


저것들은 큰 웅변이다.
시꺼먼 바윗덩어리들이 그렇게
낮은 산자락
완만한 경사 위에 무겁게 눌러앉아 있다. 그러나
인부들은 느릿느릿 풀밭을 다듬다가 가장 널찍한
바위 그늘로 들어가 점심 먹고 쉰다. 쉬는 것이 아니라
나비 발 아래마다 노오란 민들레
낮볕 같은 꽃이 연신 피어나느라, 반짝이느라
바쁘다. 지금 아무것도 죽지 않고
죽음에 대해 허퍼 귀 기울이지도 않으니 머쓱한
어른들처럼
군데군데 입 꾹 다문 바위들,
오래 흘러왔겠다. 어느덧
신록 위에 잘 어울린다.

 

· : 덕진공원에서 스님을 보다 - 이영춘
· 저자(시인) : 이영춘
· 시집명 : 꽃 속에는 신의 속눈썹이 보인다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2
· 출판사명 : 현대시
덕진공원에서 스님을 보다

이영춘

전주시 서남쪽에서 사람을 불러 세우고 있는
덕진공원으로 연꽃 보러 간다
연꽃 속에 숨어 있는 스님 얼굴 보러 간다
꽃잎과 꽃잎으로 이어진 출렁이는 긴 다리
그 다리 밟고 사람들 꽃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스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
여기서도 툭- 저기서도 툭-
툭-툭- 튀어나와 사람 사이에 눕는다

한나절 지나 저녁 노을 기우는데
문득 가슴 한 켠으로 획-스치는 소리
"스님은 네 가슴속에 살아 있다"는 가섬*의 굵은 목소리가
귀먹고 사는 내 귀청을 모질게 때리고 자나간다

연꽃은 간데 없고
천지가 온통 부처님 얼굴로 가득하다

**가섭: 부처님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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