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삼천 평 정원 - 시와 소금 2014 봄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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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평 정원 - 시와 소금 2014 봄호

연안 燕安 2014. 3. 5. 19:00
 
    삼천 평 정원 아파트 뒷산 아담한 공원이 가시 달린 피라칸타 울타리를 두르고 들어왔다 화살나무와 사철나무도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잔디밭 사이 산책길에 터를 잡은 매자나무, 배롱나무, 산딸나무, 산사나무, 자귀나무, 자작나무 홍단풍, 해당화, 산철쭉도 끼어들었다 줄지어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지지대에 기대어 기다란 몸뚱이를 흔들고 맥문동도 서둘러 양지바른 모퉁이를 골라잡았다 유실수도 빠질 수 없노라고 감나무, 매화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시원한 정자의 그늘과 가로등 불빛이 곧 뒤따라 들어왔다 공원 꽁무니에 달라붙은 사유지 임야 일천사백 평, 그 가운데 삼십 평에 세 마리 개에게 각각 집을 지어주고 주위에 영산홍 칠십 그루를 심었다 다섯 평쯤 텃밭으로 만들어 상추, 가지, 고추, 파프리카 몇 그루 심고 구덩이를 두 개 파고 호박씨를 놓았다 느린 비탈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철 따라 피어나는 꽃, 눈이 환해졌다 잎들과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 작은 새 울음소리에 귀도 맑았다 봄엔 눈을 붉게 물들이고 여름 내내 풍성한 밥상 개들과 산책을 한 덕분에 내 두 다리는 돌기둥처럼 단단해졌다 해마다 임차료 십만 원을 내고 삼천 평 정원에서 애완견과 산책을 즐기는 나는 부유층이 되었다 내년엔 허벅지만큼 굵은 참나무 아래 탁자 하나 갖다 놓고 야외 카페도 열어볼 참이다. --시와 소금 201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