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들플 본문
들 풀
정 삼 희
논두렁 양지바른 곳에
살포시 삐져나온
내 이름은 애달픈 들풀
행여
들꽃 한아름 피어나면
눈 맞추고 친구되어
어둠 속 노래하는 개구리들의
휴식처가 되리
진정
너 이름있는 꽃이라
자랑하려거든
난 이대로
이름없는
들풀이 되리
들풀 연가
임희구
파릇한첫싹이피어오를땐
나도장미꽃같은꽃잎인줄알았어요
턱밑으로깔리는
팍팍한들판을보면서
그때야뜨거운눈물을삼켰지요
꽃은무슨,
세상에나같은것도살아지네요
마른들에서살다보니
가슴도메말랐죠
불타는여름한낮
타죽을지말라죽을지
몰라요맥없이지쳐땅바닥에주저앉아
빼도박도못하는나라는걸알아버린
이지독한오기는또무슨그리움인가요
이몸
이가슴에도
사랑이꽃피던날들이있었죠
살터지도록사랑한세상
팍팍한들판에서
남몰래가슴패일날들이더많겠지만
삶이란게별거던가요
온천지사방
미친듯달려드는바람과
여름한낮찌는해가
제풀에지쳐들풀에지쳐
한발물러서는날
깊은그리움의
단단한뿌리하나둘뻗어나가는거지요
들풀
정 찬 우
바람에 흩날리어
떠도는 여행길에
어딘가 멈춰선 고향
그곳에 푸르른 잔디풀로
이 생을 노래하리
햇볕 쏟아지는 언덕이면 어떻고
개울가 비탈진 그늘이면 어떠하리
내 발 묻혀 곱게 자라
싱그러움 간직하고
보이지 않는 벌레들의 놀이터가 된다면
이 목숨 즐겁게 꽃을 피우리.
들풀
류시화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무명의 들풀로
강남주
비가 오면 모두가 젖는다.
들풀은 그 속에서
온 몸을 적시며 발뒤꿈치를 든다.
누가 알아주랴.
그의 이름을.
그래도 그는
파란 생명의 등불을 켠다.
이름은 없어도 신선한 등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