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모음

들풀

연안 燕安 2011. 3. 27. 21:25

들풀 1

 

-순수

 

 

         이지영

 

 

 

갇혔던 들풀 하나가

탈출을 시도한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가슴이 뛰고

날이 조금 밝아도

얼굴이 붉다

가랑비에도 따라 울고

달 밝은 밤에는 심장도 뛰고

 

마침내는

산으로 바다로 길을 떠나

돌을 만난다

돌에 안긴다

생각하는 갈대도 싫구나

어느 날 바람처럼 머언 여행을 시작하고

훨훨 나는 나는 자유다

무작정 뛰쳐나와 풀밭에 뒹군다

 

오랜 세월 흐른 후

들풀은 어쩔까

맥없이 하얗게 주저앉아

지금의 푸르름을 기억하겠지

가을,겨울 오지 않을 것

같은 이 푸르름을…….

 

 

 

 

 

 

들풀 2

 

-탈출

 

 

      이지영

 

 

 

쳐다만 보던 하늘을

온통 가슴 안에 품어본다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들풀의 하늘

잠재워야만 했던 외로움의 탈출

어둡고 추운 통로를 지나

바람 부는 언덕 느티나무와 춤추다

보랏빛 들국화와 들길을 걷다가

쪽빛 하늘에 꽃구름 띄워 해웃음 날리다

짙은 안개에 온갖 더러움 숨기더니

급강하 하는 한랭성

고기압을 만나 곤두박질친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나서다

어느 구름에 비 되어 폭우를 만날지.

 

 

 

 

들풀 3

 

-방황

 

 

           이지영

 

 

 

낯선 마을 어귀에서

컹컹 우짖는 미친개를 만나

사나운 이빨 맨발톱에 할퀴고 찢겨진다

달려오는 전동차를 향해 숨이 멈추게 뛰어도

놓쳐버리는 지각

붙잡아야 할 것은 다 떠난다

한 마리 물총새 되어

포효하는 겨울 바다를 찾는다

파도를 쳐도 쳐도 물뿐인 너는

슬프도록 정직하다

깜깜한 광란의 헤일이 접안(接岸)을 덮쳐 용암처럼 솟고

밤모랫바람이 비치 파라솔을 접어 하늘을 꽂는데

날아가는 찢어진 천막의 지붕

붉게 타는 노을을 함께 타지 못하고

다가오는 밤을 함께 준비하지 못하는

늘 얼굴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

혼돈의 세상 줄타기는 계속되는데.

 

 

 

 

 

들풀 4

 

-회기

 

 

           이지영

 

 

 

올려다보면 별은 멀어

매달릴수록 하늘은 점점 깊고

결국엔 위태롭던 꿈들이 추락한다

언젠가는 떨어지리라 예감했었지만

하혈로 쏟아내는 아픔의 자국

차가운 이별이 이 시린 낮달로

머리 위에서 뒹굴어도

언제 그랬던가 싶게

한결같이 피는 해와 달의 붉은 꽃

온통 가슴 안에 또 품어 본다

타 버렸던 흔적들이 세상 끝으로 사라져도

들풀의 외로움은 영롱한 이슬로 빛나

고독한 흰 영혼을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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