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모음

봄비

연안 燕安 2011. 3. 26. 23:38

봄비

 

         박금숙

 

토닥토닥 빗소리

낮은 음성이었구나

마음속 쌓인 먼지 털어주는

그대의 속삭임 같은

아롱아롱 빗방울

맺힌 사랑이었구나

마른 어깨 촉촉히 감싸주는

그대의 눈빛 같은

어느새 뚝,

짧은 미련이었구나

손놓고 가버린

그대의 희미한 발자국 같은

그랬구나.

그리움 걷어들이지 못하고

서성이는

눅눅한 내 마음 같은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이채

 

갓 피어난 풀잎 한장 따다가

고운 내 가슴에 심어나 볼까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촉촉한 가슴에 이슬처럼 맺히는

작은 빗방울 하나

틀림없이 파아란 새싹이 돋아날거야

이른 봄 창가에 앉았던

여린 햇살도 수줍은 듯

살며시 내 품으로 안겨와

연인의 숨결처럼 따스한데

아, 나는

연인이 오는 길목에서 봄비를 맞을래요

그리움 한방울로 가슴 적시는 날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어떤 웃음 지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봄비 내리는 뜨락에

아무도 몰래 꽃잎이 물들어요

차가운 기다림 풀숲에 앉았다가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멀리서 들리는 발자욱 소리에

울다가 지친 눈물 웃음되어 피어날까

아, 나는

봄비 오는 길목에서 연인을 기다릴래요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임승천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조그만 우산으로도 막을 수 있지만

내 마음에 내리는 그리움의 비는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창 밖에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내 마음에 내리는 그대 향한 그리움

이 밤에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내 가슴에 울리는 그대 향한 사랑의 노래

보고 싶은 그대 모습이여

내 마음에 내리는 그리운 내 사랑이여

 

 

 

봄비

 

                조수옥

 

저 비 맞고 나면

흙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저 비 맞고 나면

씨앗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가만있지않을것이다

아! 저 비 맞고 나면

 

 

 

봄비

 

          임명자

 

봄비는

꽃 속이나

가지 위에나

땅 속에도 집을 짓는다

그리곤 등등

온 세상에

노랗고 붉고

하얗고 푸른 멋진 새끼들을 낳아

날개를 달아 놓는다

 

 

 

봄비

 

              이향아

 

어제 맞은 비가 예사롭지 않다

언 땅에 꽂히는 은송곳처럼

오늘 아침 뼈마디가 저려오는 것은

칼빛보다 날쌔게 굳은 흙 풀어

연한 허리 새싹을 뽑아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예사롭지가 않다

하늘은 생즙 같은 빗물을 걸러

똑 똑 똑

보통 흔한 소리로 문을 두드리지만

내 몸은 골천마디 어긋나서 흔들린다

이 비에 견딜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거다

봄비 맞은 삭신이 예사롭지 않다

 

 

 

봄비

 

         박목월

 

조용히 젖어드는

초가 지붕 아래서

왼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월곡령삼십리月谷嶺三十里

피는 살구꽃

그대 사는 마을이라

봄비는 와서

젖은 담모퉁이

곱게 돌아서

모란 움 솟으랴

슬픈 꿈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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