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개간)

저울에 오르다

연안 燕安 2013. 6. 30. 19:37
 
    저울에 오르다 그는 위를 잘라냈다 불룩하던 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몸속의 공간이 작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이 줄어든다는 것 위벽 깊숙이 독버섯처럼 절망이 돋아있었다 암세포를 제거해도 홀씨처럼 퍼져 나간 종자는 폭거의 기회를 엿보며 잠복 중이었다 식탐을 자르고 포만감을 버리고 그는 저울에 올랐다 체중계는 목숨을 측정하는 탐지 표지판, 오르락내리락, 저울 눈금을 따라 운명은 거센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난항에서 순항으로 바뀌던 날, 그는 잔잔한 밤바다에 떠 있었다 뱃전에 일렁거리는 아침 햇살을 꿈꾸며 파도를 뚫고 배를 몰기로 했다 그의 몸무게가 더는 줄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시에티카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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