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서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민물도요
철새 떼가 겨울을 나는
남쪽 바닷가
구렛들과 푸른 갈대숲 사이
두루마리 펼친 듯한 둑길을 걷는다
뻘밭에 매대기질 치는 짱뚱어들
비어져 나온 아랫눈시울에
어른거리는 유년의 그림자
뙤약볕 쨍쨍한 어느 여름날
여린 손이 낚싯대를 잡아채면
흙빛 갈고리바늘에 걸려 끌려오던 짱뚱어
파란 반소매 웃옷을 걸친 소년은
고요한 개펄에서
밀려드는 호기심을 낚고 있었다
갯벌은 영혼의 콩팥
어수선한 세상살이에 곤히 잠든
아득한 삶의 한 조각이
개흙 속에서 칠게처럼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먼 수평선 위
여름 하늘이 맑은 가을날처럼 환하다.
--애지 54호 201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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