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의 시인들 (43)
벌레의 숨결
아이를 죽이는 ‘그늘의 정부’ ‘그늘의 정부(情婦)’인 박소란을 추천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발성과 화법이 나와 다르다는 것. 어딘지 모르게 활달한 진술을 따라가는 재미를 음미하다가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의미는 도망가고 그냥 어두운 감각..
김은주 시인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술빵 냄새의 시간> -2009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 ..

박 강 시인 197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쳤다. 2007년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13년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 《박카스 만세》를 출간했다. 첫 시집 《박카스 만세》의 수록작은 다음과 같다. 펭귄 폭설 우루사를 먹는 밤 벨로시랩터 철학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이상한 염색 이불 속의 마적단 서툴고 길게 말하는 것은 블루스의 조건 너와 나의 국토대장정 아랫목의 순례자들 절차탁마 발기만성 박 대리는 어디에 크레딧 건기 카운트다운 개원 위생의 제국 쇄빙 풍툼 씨의 사진관 스콜성 부지깽이 소셜 클럽 바이킹 누아르에 대한 짤막한 질문 쨍하고 해 뜰 날 오도독 누룽지 봄날은 간다 렉터 박사의 처방전 고물 드럼을 꺼내다 박공지붕 복원건축공법 폐원 물음표에 ..
이이체 시인(본명:이재훈) 198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2008년 《현대시》에 〈나무 라디오〉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죽은 눈을 위한 송가』(문학과지성사, 2011)가 있음.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휴학중. -이산(離散)/이이체- 나비의 날개에서 봄이 접힌다. 휘몰아치는 나선계단의 말미에 붉게 빛나는 대문이 있다. 등(燈) 대신 피를 밝혀놓은 문설주, 바닥엔 낮잠을 깨운 기와가 즐비하다. 열린 문틈으로 노랗게 익은 마당이 펼쳐지고, 원근법으로 늘어진 시절이 덩그러니 누워 있다. 지붕 아래 과년한 나무들을 베어 지은 툇마루에 기녀들이 앉아 꽃잎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눈길을 흘린다. 가장자리에서 가만히 타오르는 무화과나무, 불꽃이 몰래 살고 있는 나무의 후생이 푸르게 타오른다. ..
김지녀 시인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7년《세계의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시소의 감정』. -큰 파란 바람의 저녁/김지녀- 바람은 쉽게 땅에 발을 내려놓지 못하고 달아난다 강을 지나 일 년 내내 눈 쌓인 계곡을 지나 그러나 간단하게 뭉쳐지는 구름들 사이로 무섭게 직진하고 있는 태양의 기둥을 지나 벽을 뚫고 천년 전에 만났다 헤어진 사람의 눈동자를 핥으며 지구를 만년쯤 돌고 있는 바람이 이마에 와 닿을 때 국경을 넘어온 얼굴처럼 얼어있는 저녁을 바라볼 때 나는 기둥, 이라는 제목의 나무 활엽으로 침엽으로 옮아가는 숲의 그늘 절벽 위에 서 있으면 어느 고원을 떠돌다 사라진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돈다 입술 튼 바람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전진하거..
주하림 시인 1986년 7월 10일 (만 28세), 전북 군산시 | 호랑이띠, 게자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2009년 창비가 주관하는 제9회 창비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13년 3월 첫 시집 《비버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을 출간했다. 레드 아이 무릎에 생긴 멍이 어느 날 눈동자가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도중 엄마의 남자와 작은 목소리로 다툰 날이었고 결혼을 앞둔 남자가 폭염을 만들어 낸 날이었습니다 어둠이 원치 않은 곳에서 서서히 눈 뜨는 동안 싸움을 말리던 아버지가 멜빵차림 어린애로 변하고 친구가 나의 미래를 헐뜯다 떠났죠 마을 뒤 작은 언덕을 끝없이 달리고서야 눈의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동네안과에 찾아가 피가 뚝뚝 흐르는 무릎을 올려놓습니다 입이 세 개인 것보다 낫지 않나요 당..
박연준 1980년 서울 출생.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 창비, 2007. 박연준(27)은 2004년 시 '얼음을 주세요'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선명한 인상을 주며 데뷔한 시인이다.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여린 풀잎들,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중략)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하며 나를 찌르겠죠/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얼음을 주세요' 중) 선정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자기 부정의 갈래길을 보여준 시인의 탄생을 지켜본 지 3년. 1980년 생이라는 출생년도가 말해주듯 그의 첫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은 ..
이지호 시인 1970년 충남 부여 출생 충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졸업 2011년《창작과비평》신인상으로 등단 -읍소하는 남자/이지호- 한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네 한 남자는 손을 맞잡고 연신 조아리고 있네 날개를 접고 지상에 내려앉은 비둘기. 아이가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먹고 있네 흔들리는 목적이 있어야 접었다 폈다 하는 날개가 있네 간절함이 가득 묻어 있는 손 불안한 손바닥끼리 맞잡고 있네 맞잡는다는 것,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네 기울어진 중심점은 비굴함 쪽으로 기울어져 있네 상대의 열려 있는 틈으로 사내의 비굴함이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네 또르르 떨어지는 나뭇잎에 펴졌던 날개의 기억은 날아가고 휘휘 젓는 아이 손에 눈치만 보고 있는 날개 얼음도 녹일 것 같은 뜨거움이 손에 가득하네 축축한 ..
정선 (정경희) 시인 전남 함평에서출생.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천년의시작, 2010), 에세이집 『내 몸 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가 있음 . 201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6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정선 시인의 첫 시집 -상처의 치유 혹은 번짐 등단 4년 만에 펴내는 정선 시인의 첫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는, 그녀 속에 웅크리고 있던 오랜 기억과 감각과 충동들이 매우 선명한 물질적 구체성을 가진 채 펼쳐지고 있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정선 시인은 “상처가 날개가 되도록/(…)/누가 나를 때려다오”(「타작」) 같은 언명을 통해, 오랜 기억 속에 깃들여 있던 ‘상처’들이 자신의 존재론적 근거를 이..
박성준(1986년 ~ ) 서울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 2009년 제9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 2013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수상 시집 《몰아 쓴 일기》(문학과 지성사 2012) -시커먼 공중아, 눈가를 지나치는 혼돈 같은 교감아/박성준- 창; 꿈의 건조를 위하여 창문을 열고 혀를 내민다 사랑하는 입술이 입술로부터 넘쳐, 입술밖에 없는 얼굴 입술 바깥에만 있던 얼굴 얼굴을 열어야 했다, 사랑도 없이 내 혀는 늘 실망을 대비하기 위해 젖어 있었지만 나에게 실망한 나는, 착해 본 적이 없어 혓바늘을 스치며 바람이 빳빳해진다 햇빛도 없이 자라 온 살갗의 안쪽은 붉고, 하얗고, 마른 혀에 깃든 체중 혀는 돌처럼 중력에 의해 떨어져야만 하지만 그 깊이는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