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반경환의 명시감상 6----장석주의 「돌과 박새」에 대하여 본문
반경환의 명시감상 6
----장석주의 「돌과 박새」에 대하여
아궁이 잿속 불구덩에 묻은 감자만 하랴. 네 속은 내가 안다, 참 시커멓게도 탔구나. 난 쓸데없이 많은 책을 읽었어. 덧없는 것들과 관계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산비알같은 명예를 잃었어. 사랑하는 것들은 참 멀리 있구나. 무슨 염치로 당신의 이쁜 엉덩이를 보겠어. 가슴에 벙어리 종달새 암수 한 쌍, 첫 수확한 토종꿀같이 오는 황혼, 하늘에 진흙으로 구운 구름들, 거리엔 남의 애를 밴 여자들이 걷는다. 난 무분별과 어리석음으로 청춘을 낭비했어. 박새들아, 내 빚을 탕감해 줘.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못 지켰으니, 때늦은 후회로 자주 정수리는 과열되고 무릎 몇 개쯤 잃어버려도 좋아. 헌 가슴팍에 둥지를 틀다가 소스라쳐 날아가는 가을 박새들아. 잘못 했어, 잘못 했어. 돌아, 센 불에 졸아든 한약 같은 네 입김을 내 귓바퀴에 한 번만 부어줄래?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릴 한 번 찍어줄래?
----「돌과 박새」(?붉디 붉은 호랑이?, 애지 2006년)전문
장석주 시인은 일찍이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과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중진 시인이며, 어느 덧 그의 시력(詩歷)이 삼십 여년이 넘는다. 그는 제1회 ‘애지문학상’(문학비평부문)을 수상했을만큼 문학비평가로서도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명실공히 창작과 이론의 실력을 두루 다 갖춘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시, 「돌과 박새」는 매우 투박해보이지만, 시인의 자기 반성과 성찰이 돋보이는 시이며, “난 무분별과 어리석음으로 청춘을 낭비했어. 박새들아, 내 빚을 탕감해 줘.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못 지켰으니, 때늦은 후회로 자주 정수리는 과열되고 무릎 몇 개쯤 잃어버려도 좋아. 헌 가슴팍에 둥지를 틀다가 소스라쳐 날아가는 가을 박새들아. 잘못 했어, 잘못 했어. 돌아, 센 불에 졸아든 한약 같은 네 입김을 내 귓바퀴에 한 번만 부어줄래?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릴 한 번 찍어줄래?”라는 시구를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심금을 울려놓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반성이란 과거의 삶과 행위에 대하여 선악의 시비를 가려보는 것을 뜻하고, 성찰이란 반성하여 살펴보는 것을 뜻한다. 반성과 성찰이란 이음동의어에 불과하지만, 반성과 성찰이 없는 인간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며, 미래의 희망이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은 매우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이며, 따라서 잘못된 삶과 부화뇌동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잘못된 삶을 살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잘못된 삶과 죄 자체를 긍정하고 미화시켜서는 아니된다. 잘못된 삶을 살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보다 나은 삶과 아름다운 선행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써만 그 의의를 띠게 될 뿐인 것이다. 잘못된 삶과 죄 자체가 보다 나은 삶과 아름다운 선행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귀족들은 분노에 불타고 있군......내가 잘못했구나......피 위에 세워진 토대는 확고하지 못하지...... 타인의 죽음으로 얻어진 생명은 안전하지 못하지”의 「존왕」처럼, 죄가 말갛게 씻어지는 자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의 반성과 성찰의 시간에는 ‘후회’의 감정이 탄생하고, 그 후회의 감정은 도덕적 판단이 낳은 괴로운 감정이 된다. 또한 그 반성과 성찰의 시간에는 새로운 희망의 감정이 탄생하고, 그 희망의 감정은 삶의 의지가 꽃 피워낸 감정이 된다.
장석주 시인의 「돌과 박새」는 존재론적 입장에서 두 개의 자아들이 무서운 짝패처럼 대립상으로 등장한다. 과거의 자아는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와의 분간이 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시적 자아 속에서 현실적 자아가 그 자취를 감춰버리고, 현재의 자아는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와의 분간이 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 자아 속에서 시적 자아가 그 자취를 감춰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시적 자아는 “아궁이 잿속 불구덩에 묻은 감자만 하랴. 네 속은 내가 안다, 참 시커멓게도 탔구나”, “난 무분별과 어리석음으로 청춘을 낭비했어”라는 시구에서처럼, “쓸데없이 많은 책들을 읽고” “덧없는 것들과 관계하느라 인생을 허비”한 자아에 지나지 않으며,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못 지키고”, “때늦은 후회”로 그 괴로움을 낳은 자아에 불과하다. 그 과거의 자아는 허영과 치기에 사로잡혀서 인생을 탕진한 자아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자아는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못 지켰으니, 때늦은 후회로 자주 정수리는 과열되고 무릎 몇 개쯤 잃어버려도 좋아. 헌 가슴팍에 둥지를 틀다가 소스라쳐 날아가는 가을 박새들아. 잘못 했어, 잘못 했어. 돌아, 센 불에 졸아든 한약 같은 네 입김을 내 귓바퀴에 한 번만 부어줄래?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릴 한 번 찍어줄래?”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과거의 잘못된 삶을 반성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참 멀리 있구나. 무슨 염치로 당신의 이쁜 엉덩이를 보겠어”의 그 사랑과 새로운 삶의 둥지를 찾아가고자 한다.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중, 시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를 흡수해버려도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이와는 정반대방향에서,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중,현실적 자아가 시적 자아를 흡수해버려도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전자에서는 쓸데없이 책을 많이 읽어버리는 미치광이가 탄생하게 되고, 후자에서는 오직 최고 이윤의 법칙을 쫓아서 모든 인간 관계를 파탄의 관계로 몰아넣는 미치광이(수전노)가 탄생하게 된다.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들은 그 어린 아이들(미치광이들)의 거울 단계를 벗어나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적절한 대립과 그 긴장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석주 시인의 「돌과 박새」는 다음과 같이 산문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 나는 쓸데없이 많은 책을 읽으며 덧없는 것들과 관계 하느라 인생을 허비했다.
2, 나는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돈과 명예와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렸다.
3, 그러므로 나의 속은 불에 탄 감자처럼 속이 시커멓게 탔고, 때 늦은 후회로 자주 정수리는 과열되고, 무릎을 몇 개쯤은 잃어버린 것 같다.
4, 그 흔하디 흔한 텃새인 박새마저도 내 가슴팍에는 둥지를 틀고 있지 않으니,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리 한 번 찍어다오.
장석주 시인의 자기 반성과 성찰은 부도덕한 자의 위선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있는 자의 처절한 그것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존왕」의 고통과 장석주 시인의 고통은 상호간의 신분의 차이와 무대배경만이 다를 뿐, 그 근본의 토대는 진정성의 토대라고 할 수가 있다. 진정성의 세계는 가식이 없는 세계이며, 허영이 없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꾸밈이 없는 아름다운 세계이며, 도덕적 선의 세계이다. 칸트가 아름다움을 도덕적 선이라고 역설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였을 것이다. “아궁이 잿속 불구덩에 묻은 감자만 하랴. 네 속은 내가 안다, 참 시커멓게도 탔구나”, “ 사랑하는 것들은 참 멀리 있구나. 무슨 염치로 당신의 이쁜 엉덩이를 보겠어. 가슴에 벙어리 종달새 암수 한 쌍”, “난 쓸데없이 많은 책을 읽었어. 덧없는 것들과 관계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산비알같은 명예를 잃었어”라는 시구들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고, 또한, “난 무분별과 어리석음으로 청춘을 낭비했어. 박새들아, 내 빚을 탕감해 줘”,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못 지켰으니, 때늦은 후회로 자주 정수리는 과열되고 무릎 몇 개쯤 잃어버려도 좋아. 헌 가슴팍에 둥지를 틀다가 소스라쳐 날아가는 가을 박새들아 잘못 했어, 잘못 했어”, “돌아, 센 불에 졸아든 한약 같은 네 입김을 내 귓바퀴에 한 번만 부어줄래?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릴 한 번 찍어줄래?”라는 시구들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가짜 시인은 머릿 속으로 시를 쓰지만, 진짜 시인은 온몸으로 시를 쓴다. 가짜 시인은 자기 반성과 성찰이 없지만, 진짜 시인은 그 자기 반성과 성찰의 토대 위에서 고통으로, 혹은 붉디 붉은 그의 피로써 시를 쓴다. 장석주 시인의 「돌과 박새」는 아름답고 장식적인 말과 수사적인 기교를 모르는 시이며, 그 아름답고 장식적인 말과 수사적인 기교를 뛰어 넘어서, 더욱 더 아름다운 말과 정교한 기법을 구축해놓은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장석주 시인은 왜 자기 반성과 성찰의 시를 「돌과 박새」라고 명명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천지창조주인 하나님처럼 시인의 특권일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 지점에는 시인의 도덕과 윤리 의식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때늦은 후회로 속이 시커멓게 탄 시인이며, “첫 수확한 토종꿀같은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초로의 시인이다. 나의 헌 가슴팍, 아니, 나의 상한 가슴팍에는 그 흔하디 흔한 박새까지도 둥지를 틀려고 하지를 않는다. 따라서 시인은 첫 수확한 토종꿀같은 황혼의 시간을 움켜쥐고, “잘못 했어, 잘못 했어”, “센 불에 졸아든 한약 같은” 돌들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간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돌은 어떠한 외풍에도 의연하고 꿋꿋하게 버티는 인간의 상징이 되고, 또한 그 돌은 시인의 어리석음과 무분별함에 반하여,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릴 한 번 찍어줄래?”라는 시구에서처럼, 현명하고 지조 높은 인간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새는 텃새이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새이다. 덩치는 참새만 하고 머리는 흑백색이며, 뺨과 배는 백색, 등은 황록색, 날개에는 흰띠가 있는 것이 그 특징적이다. 한 해에 두 번씩 새끼를 치고, 곤충을 잡아먹는 아름다운 보호조이기도 하다. 장석주 시인이 그 텃새인 박새를 시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자기 자신의 가슴 속에다가 아름다운 박새를 키우며, 잃어버린 사랑과 생활 현실을 하루바삐 회복시키고, “첫 수확한 토종꿀 같은 황혼”의 시간을 아름답고 행복한 삶으로 향유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오, 장석주 시인이여! 그대의 토종꿀같은 황혼의 시간이 더욱 더 아름답고 행복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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