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반경환의 명시감상 2 본문
반경환의 명시감상 2
----이재무의 「테니스 치는 여자」에 대하여
테니스 치는 여자는 물 속 유영하는 물고기 같다
그녀의 동작은 단순하지만 매우 율동적이다
물 오른 그녀의 종아리는 자작나무의 허리처럼 매끄럽다
땀 밴 등허리에 낙지발처럼 와서 안기는 햇발
통통, 바람 많이 든 공처럼 그녀의 종아리가 튀어 오르면
수음하는 소년처럼 나는 숨이 가쁘다 두 팔에 힘을 주어
그녀가 라켓을 휘두를 때 깜짝깜짝 놀라며 파랗게 몸을 뒤집는
이파리들, 내 마음의 사기 그릇들 반짝반짝 웃는다
네트를 넘어오는 발 빠른 공에 시선을 집중하는
그녀의 눈 속으로 오후의 낡고 오래된 시간들이 갑자기
생기를 띠고 소용돌이 치며 빨려들어 가고 있다
날마다 오후 세 시 공원에 나와 하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테니스를 치는 여자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의 뜰에 그리움의 풀씨 내려와 싹을 틔운다
알맞게 달구어진 그녀의 팔뚝이 지나간 허공에
몰려드는 파란 공기 입자들 그녀가 테니스를 치는 동안
세상은 발칙한 소녀와 같이 건방지고 젊어진다 그녀가 간간이
터뜨리는 웃음으로 세상은 환하고 눈부신 꽃밭이 된다
테니스 치는 여자는 공중을 나는 새처럼 가볍다
저 가벼움이야말로 무거운 세상을 이기는 힘이 아닐까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풍경이 되어 풍경 속을 거닌다
----이재무, 「테니스 치는 여자」(?푸른 고집?, 천년의 시작, 2004년) 전문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시간이 곧 돈이며, 그 모든 것이 시간(속도)과의 전쟁이라고할 수가 이다. 타인들보다 더 잘 시간을 관리해야 하고, 또, 그리고, 타인들보다 모든 일들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모는 우리 인간들의 ‘인식의 혁명’을 불러 일으켰고, 그 혁명을 주도한 것은 컴퓨터에 의한 ‘인터넷 기술의 향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 속도와의 충돌을 역설하면서, ‘선두’와 ‘느림보’라는 아홉 가지의 유형들을 제시놓고 있다.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기업들이며, 시속 90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비정부기구, 즉 시민단체들이다.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가정들이며, 시속 30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노동조합들이다. 또한 시속 25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관료조직들이며, 시속 10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교육제도들이다. 그리고, 이밖에도 세계관리기구는 5마일, 의회, 백악관, 정부의 조직들은 3마일, 그리고 가장 느리고 더딘 속도를 자랑하는 집단들은 법원을 비롯한 법조인들의 단체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요컨대 종이(서류) 없는 회사와 관공서의 탄생을 꿈꾸고 있는 빌 케이츠와도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날의 변화는 가속의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터넷 생활 양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도태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모든 시장이 개방되면서, 문화선진국들은 고용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자본과 상품이 실시간대로 국경을 넘나들고, 다국적 기업들은 값싼 땅과 값싼 인건비와 그리고 면세혜택을 찾아서 그 공장들을 옮겨가고 있다. 문화선진국들의 고용 없는 성장은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대량실업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시간의 속도는 자본의 속도이며, 자본의 속도는 ‘최고 이윤법칙’의 속도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 속도와의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고 ‘저비용--고효율’의 산업현장을 찾아나서고, 그 반면에, 대부분의 우리 인간들은 그 속도와의 경쟁이 두려워서, ‘고비용--저효율’의 구조 속에서 안주하려고 한다. 자본가들의 가장 무거운 짐은 ‘고비용--저효율 구조’이며, 우리 인간들의 가장 무거운 짐은 ‘저비용 --고효율 구조’이다.
이재무 시인은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했고, 첫 시집 ?섣달 그믐?에서부터 제7시집 ?푸른 고집?에 이르기까지, 20여년 동안 주옥같은 시를 써온 중견 시인이다. 그의 「테니스 치는 여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푸르고 푸른 봄날 오후, 모처럼만에 ‘에로스의 환한 웃음꽃’을 피워놓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테니스 치는 여자’의 동작은 단순하지만 매우 율동적이고, 그녀는 바야흐르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와도 같게 된다. 그녀의 땀 밴 등허리에는 낙지발처럼 햇발이 안겨들고, 그녀의 종아리가 통통통, 튀어오르면 ‘나는 수음하는 소년처럼 숨이 가쁘게’ 된다. 이때에 ‘나는 수음하는 소년처럼 숨이 가쁘다’라는 시적 표현은 나는 그녀의 젊고 예쁘고 건강한 모습에 반했다는 뜻이며, 따라서 그녀가 테니스 라켓을 휘두를 때마다 ‘내 마음은 사기그릇들처럼 반짝반짝 웃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하얀 미니스커트 차림의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부서지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사기그릇들로 변모된 것이며, 따라서 그는 마치 발정기에는 목숨을 걸고 제짝을 찾아나서는 수컷들처럼, 그녀와의 달디 단 입맞춤과 그 황홀한 성교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어느 덧 그는 디지털 시대의 속도와의 전쟁과 ‘저비용--고효율 구조’라는 무거운 짐도 내려 놓은 채, “테니스를 치는 여자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의 뜰에 그리움의 풀씨 내려와 싹을” 튀우게 된다. 산책은 한가함과 여가를 필요로 하고, 운동도 한가함과 여가를 필요로 한다. 풍경을 바라보거나 풍경이 되는 것도 한가함과 여가를 필요로 하고, 사랑도 한가함과 여가를 필요로 한다. 산책, 운동, 풍경, 사랑은 속도보다는 느림의 영역에 속하고, 그 느림의 영역에서만이 제대로 발아하고 그 개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 느림은 느림이 아니라, 그 어떠한 속도보다도 더 빠른 속도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 느림의 주체자는 어느 덧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처음 본 그녀와의 사랑을 통해서, “내 마음의 뜰에 그리움의 풀씨의 새싹들”을 튀우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는 상상력의 날개를 타고, 첫 만남에서부터 임신까지, 그리고 그 임신에서부터 출산까지를 가장 날렵하고 신속하게 연출해놓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상상력의 혁명이며, 그 상상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느림의 속도학이다. 더 많이, 더 빨리, 그리고 더욱 더 정확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은 산업현장과 삶의 현장에서의 일이지만, 그러나 노동 뒤에는 휴식이, 밝은 대낮 뒤에는 밤이 필요하듯이,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산책, 운동, 풍경, 사랑 등의 ‘느림의 속도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재무 시인은 그의 걸작품, 「테니스를 치는 여자」를 통해서, 이 세상을 테니스 치듯, 운동경기 하듯, 살고 싶다고 말한다. 테니스는 운동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고, 또한 테니스는 유희(놀이)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공중을 나는 새처럼”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닐 수가 있다. 그녀가 테니스를 치는 동안, 이재무 시인의 생식선이 발달하고, 또 그녀가 테니스를 치는 동안, 어느 덧 이재무 시인과 그녀 사이에서는 “내 마음의 뜰에 그리움의 풀씨”같은 아이들이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세상은 발칙한 소녀와 같이 건방지고 젊어진다”라는 시구는 그녀가 그만큼 젊고 예쁘고 건강하며, 또한 그만큼 사랑스럽다는 뜻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발칙하다’는 ‘몹시 버릇없다’, ‘하는 짓이 괘씸하다’의 뜻이지만, 그러나 그 발칙하다는 반어와 역설의 어법을 타고 그녀에 대한 무한 사랑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재무 시인의 「테니스 치는 여자」는 반어와 역설의 환한 웃음, 또, 그리고, 그 짐승스러운 성적 욕망과 순수한 사랑의 결합으로 ‘에로스의 환한 웃음꽃’을 선사해주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재무 시인은 오늘도 아름답고 젊고 예쁜 여자와의 사랑을 원하고, 그리고 그녀와 함께, 그 아름답고 화려한 지상낙원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원한다.
테니스를 치는 여자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의 뜰에 그리움의 풀씨 내려와 싹을 틔운다
알맞게 달구어진 그녀의 팔뚝이 지나간 허공에
몰려드는 파란 공기 입자들 그녀가 테니스를 치는 동안
세상은 발칙한 소녀와 같이 건방지고 젊어진다 그녀가 간간이
터뜨리는 웃음으로 세상은 환하고 눈부신 꽃밭이 된다
테니스 치는 여자는 공중을 나는 새처럼 가볍다
저 가벼움이야말로 무거운 세상을 이기는 힘이 아닐까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풍경이 되어 풍경 속을 거닌다
'현대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경환의 명시감상 4----이영식의 「休」에 대하여 (0) | 2013.03.05 |
---|---|
반경환의 명시감상 3----최금녀의 「한겨울 나무마을에 간다」에 대하여 (0) | 2013.03.05 |
[스크랩] 열매를 닮은 꽃은 없다 /이미화 시인 (0) | 2013.02.27 |
[스크랩] 201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미화 (0) | 2013.02.27 |
[스크랩]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작] 경남신문, 영남일보, 국제신문 - 허氏의 구둣방/이미화, 구름의 화법/하기정,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박진규 (0) | 2013.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