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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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모음

봄은 꽃들의 구치소이다/조연향

연안 燕安 2013. 1. 15. 08:40


봄은 꽃들의 구치소이다

조연향


담장 휘어진 가지마다 횃불을 밝히는
낯선 곳으로 이끌려 온 듯 두리번두리번
봄은 꽃의 입구를 찾는다
봄이 꽃들의 구치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면회 시간이 너무 짧다고, 一生이 그러하듯이)
꽃들과 봄은 서로의 문을 쉽게 찾는다
서로에게 아직
그 향기 남아 있으므로
활활 타오르는 노오란 자유의 세계 앞에
딸랑딸랑 하나씩 열쇠를 흔들며 새들이 울어댄다
얼마나 아득한 생이었던가
잠그고 떠나갔던 시간을 다시 풀고,
오랜 어둠의 결박을 풀고
깊숙한 밤의 늪 속에서 끌고 온 길들을
부려 놓는다
얼마나 아득한 날들이었던가
바람이었던 겨울이었던 입구에서

꽃의 기억을 가득히 가두고 있는
봄의 입구까지 두리번두리번
누가 나를 여기서 하차하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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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낡은 말뚝도 푸른 빛이 되고 싶다는
봄이었던가.
겨우내 칙칙하게 묶여 있던
결박을 풀고 새로운 움이 돋는다.
꽃이 핀다. 그 부푼 희망 속으로
새들의 울음소리가 연초록 세상을
한 묶음 끌고 오고 있다.
개나리며 진달래, 목련 등 봄꽃들이 촌음을
다투어 한무리씩 나누어 피어나고,
바야흐로 세상은 봄이다.
봄, 그 황홀함 가운데로 발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짧아서 섪고, 짧아서 아름다운
정녕 봄은 꽃들의 슬픈 구치소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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