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봄은 꽃들의 구치소이다/조연향 본문
봄은 꽃들의 구치소이다 조연향 담장 휘어진 가지마다 횃불을 밝히는 낯선 곳으로 이끌려 온 듯 두리번두리번 봄은 꽃의 입구를 찾는다 봄이 꽃들의 구치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면회 시간이 너무 짧다고, 一生이 그러하듯이) 꽃들과 봄은 서로의 문을 쉽게 찾는다 서로에게 아직 그 향기 남아 있으므로 활활 타오르는 노오란 자유의 세계 앞에 딸랑딸랑 하나씩 열쇠를 흔들며 새들이 울어댄다 얼마나 아득한 생이었던가 잠그고 떠나갔던 시간을 다시 풀고, 오랜 어둠의 결박을 풀고 깊숙한 밤의 늪 속에서 끌고 온 길들을 부려 놓는다 얼마나 아득한 날들이었던가 바람이었던 겨울이었던 입구에서 꽃의 기억을 가득히 가두고 있는 봄의 입구까지 두리번두리번 누가 나를 여기서 하차하라고 했지? ===================================== [감상] 낡은 말뚝도 푸른 빛이 되고 싶다는 봄이었던가. 겨우내 칙칙하게 묶여 있던 결박을 풀고 새로운 움이 돋는다. 꽃이 핀다. 그 부푼 희망 속으로 새들의 울음소리가 연초록 세상을 한 묶음 끌고 오고 있다. 개나리며 진달래, 목련 등 봄꽃들이 촌음을 다투어 한무리씩 나누어 피어나고, 바야흐로 세상은 봄이다. 봄, 그 황홀함 가운데로 발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짧아서 섪고, 짧아서 아름다운 정녕 봄은 꽃들의 슬픈 구치소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양현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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