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봄눈 본문
봄눈
서지월
봄눈이 온다. 봄눈이
온다. 미친 봄눈이 괴나리봇짐 싸들고
실눈으로 온다. 와서는
이 세상 어디 배불리 먹을 곳 있느냐며
내 살던 고향의 산천을 뒤덮고
복사꽃 가지 끝에 와서는 풀어내는
거짓 향기
호오이 호오이 손 시리고 발 시리던 우리들 사랑 앞에
게으른 겨울잠 속에 빠졌다가
미나리꽝 새길 난 길 위로 봄눈이
순이의 물동이를 적시고
우리가 사는 이 거리 진흙 위에도
미친 바람과 함께 내린다
언 가슴 마른 풀잎 위에 싱싱한
바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길 위로
잽싸게 달려온 한파와 함께
봄눈 속에 네가 쓰러지고 내가 쓰러지고
일으켜 세운 하늘이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