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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모음

봄눈

연안 燕安 2011. 3. 6. 22:44


봄눈

 

 

               서지월

 

 

 

봄눈이 온다. 봄눈이

온다. 미친 봄눈이 괴나리봇짐 싸들고

실눈으로 온다. 와서는

이 세상 어디 배불리 먹을 곳 있느냐며

내 살던 고향의 산천을 뒤덮고

복사꽃 가지 끝에 와서는 풀어내는

거짓 향기

호오이 호오이 손 시리고 발 시리던 우리들 사랑 앞에

게으른 겨울잠 속에 빠졌다가

미나리꽝 새길 난 길 위로 봄눈이

순이의 물동이를 적시고

우리가 사는 이 거리 진흙 위에도

미친 바람과 함께 내린다

언 가슴 마른 풀잎 위에 싱싱한

바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길 위로

잽싸게 달려온 한파와 함께

봄눈 속에 네가 쓰러지고 내가 쓰러지고

일으켜 세운 하늘이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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