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집을 짓는 것들은 날개들뿐이다. 새들의 건축법에는 면적을 재는 기준이 직선에 있다고 나와 있다.
직선은 흔들리는 골재를 갖고 있다. 문 없는 집, 계단 없는 집, 지붕이 없는 집, 없는 게 너무 많아 그 집을
탐하는 것들도 별로 없다.
미루나무에 빈집 몇 채 얹혀 있다. 층층을 골라 다세대 주택 같다. 포란의 계절에만 공중의 집에 전세를 드는
새들, 알들이 아랫목처럼 따뜻할 것 같다. 아궁이에선 초록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어둠을 끌어다 덮으면 아랫목
에서 날개가 파닥일 것 같다.
공중 집을 보면 새들의 작고 뾰족한 부리가 생각난다. 날개에 붙어 있는 공중의 주소, 셀 수 없는 바람의 잔가지들이 엉켜 있어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엔 개의치 않는다. 양 날개에 바람을 차고 나뭇가지를 나르던 가설의 건축.
쌀쌀한 날씨에 군불처럼 둥지에 앉아 있는 새들.
불안한 울음이 가득한 포란의 집.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닌다. 직선의 면적에 둥근 방. 문고리가 없다.
이제 소란한 공중은 새들의 소유다.
-----------------------
시 당선 소감
초심 간직하며 쓰겠습니다…맑은 새 소리 들릴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렸다. 바람의 부위들이 시원했다. 언제부터 이 강변의 바람들에게 부위가 생겼을까? 땀으로 남아 있는 바람에게 물어보았다. 묵묵부답.
전화를 받고 믿어지지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아직 불안한 스스로였기에 너무 함부로 나를 믿으시는 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불안했다.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두 분이 마늘을 심고 막 들어오셨다고 했다. 단 한 쪽의 쪽마늘을 심어놓고 매운 여섯 쪽의 마늘 한 통이 될 때까지 기다릴 어머니와 꽃피는 철을 가늠하며 꿀벌을 돌보시는 아버지, 당신들이 내겐 시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윙윙거리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와 마늘의 매운맛이 느껴져 울컥,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두 분께 신성한 영광을!
뒤늦은 공부를 묵묵히 후원해 주신 남편 김성수씨, 아들 정민, 딸 지예. 함께여서 더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목포대 국문과 은사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바람이 불었지만 여전히 더웠고 햇볕은 따가웠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또 달렸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종내에는 넘어지고 말 것임을 안다. 이제 나는 자전하는 두 개의 달을 씽씽 굴리고 말 것이다.
포란의 끝을, 날카롭게 깨어주신 이문재 선생님과 나희덕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줄(啐)의 성급한 몸부림에 탁(啄)으로 화답이 온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지만, 오래 달을 품겠습니다. 그 달이 깨어져 맑은 새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마음을 다잡고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끝으로 은둔의 스승께 새 회초리를 장만해 드리고 남쪽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김미나
1964년 전남 여수 출생. 목포대학교 국문과, 교육대학원 졸업.
시 심사평
관찰·상상력에 탄탄한 문장…시 영역 확장시킬 노련한 신인
정지오씨의 ‘치통’ 외 5편은 타자와 소통하려는 화자의 의지를 중심에 놓고 있었지만 빈번한 비유가 의미를 빚어내지 못했다. 낯선 시어들을 연결해 난해한 이미지를 만들려 하지 말고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박은지씨의 ‘내일 너를 만난다는 생각에’와 ‘샘다방’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그런데 개연성이 부족했다. 너를 만나러 가는데 왜 소화제를 먹는지, 왜 손발이 차가워지는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샘다방’은 리듬감이 뛰어났지만 중간 부분에서 산만해지고 말았다. 4연 정도로 압축했다면 완성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다. 박현준씨의 응모작은 다른 응모작에 견주어 일상적 언어를 시 속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시공간의 맥락이 희미했다. 시공간의 비약이 심하다는 말이다. 시의 핵심 요소인 시간과 공간(장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당선작은 김미나씨의 ‘포란의 계절’로 결정했다. 관찰력과 상상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문장도 탄탄했다. 응모작 6편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믿음직스러웠다. “날개에 붙어 있는 공중의 주소”를 보는 눈이 우리 시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갈 것이다. 노련한 신인이 탄생했다.
시인 지망생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다. 그런데 강박은 추진력이 되기 어렵다. 새로운 것보다 ‘다른 것’을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것은 하나지만, 다른 것은 여럿이다. 새로운 것은 앞에만 있지만, 다른 것은 양 옆, 앞뒤, 위아래에 다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의 시야는 좁고, 다른 것의 시계는 넓다. 새로운 것이 미래와 연관된다면, 다른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른다. 새로운 것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새로운 시보다 다른 시가 더 좋을 수 있다. 다른 시가 더 새로울 수 있다.
◆본심 심사위원=나희덕·이문재(대표집필 이문재)
◆예심 심사위원=권혁웅·문태준
시 본심 진출작(23명)
● 권민자 : ‘새’ 외 4편
● 김미나 : ‘나무의 울음’ 외 5편
● 김잔디 : ‘화훼공원’ 외 4편
● 김지은 : ‘우생학’ 외 4편
● 김창훈 : ‘정육점’ 외 4편
● 박근영 : ‘코피 루왁’ 외 4편
● 박봉서 : ‘춘천역전’ 외 4편
● 박용우 : ‘주름’ 외 4편
● 박은지 : ‘내일 너를 만난다는 생각에’ 외 4편
● 박현준 : ‘Free Size’ 외 4편
● 서진배 : ‘그 여자의 거실에는 기차가 달려가지’ 외 4편
● 이상협 : ‘벌레의 귀향’ 외 4편
● 이용석 : ‘일어나라, 향동동이여’ 외 4편
● 이정현 : ‘피날레’ 외 12편
● 이해존 : ‘감별사 K’ 외 5편
● 정수인 : ‘요르문간드’ 외 5편
● 정지오 : ‘치통’ 외 5편
● 정지우 : ‘바람 媒染(매염)’ 외 5편
● 조유선 : ‘비대칭의 수기’ 외 4편
● 조창규 : ‘이상한 가족상품 특별전’ 외 4편
● 최상훈 : ‘버스 정류장’ 외 4편
● 하미숙 : ‘샌드 페인팅’ 외 7편
● 황소해 : ‘모래나무’ 외 5편
----------------
[알림]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포란의 계절’ 당선 취소
[중앙일보] 입력 2011.11.18 00:11
그 결과 ‘포란의 계절’이 다른 시(강정애의 ‘새장’, 김후인의 ‘나무의 문’, 박해람의 ‘독설’ 등)를 명백하게 표절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어휘와 소재, 발상 등 여러 층위에서 ‘포란의 계절’과 관련 작품들 사이에 표절에 근접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따라 ‘포란의 계절’이 등단작으로서 갖춰야 할 독창성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당선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가능성 있는 문학 신인의 앞날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사자가 당선 취소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을 쓰는 것만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미나씨의 건투를 빕니다.
이번 일로 독자 여러분께 혼란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앞으로 중앙일보는 신인문학상 응모작에 대해 보다 엄정한 검증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표절 시비에 참고한 작품들>
새장 / 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
---------
나무의 문/김후인
몇 층의 구름이 바람을 몰고 간다
그 몇 층 사이 긴 장마와
연기가 접혀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층 사이에 머무르는 種들이 많다
發芽라는 말 옆에 온갖 씨앗을 묻어 둔다
여름, 후드득 소리나는 것들을 씨앗이라고 말해본다
나는 조용히 입 열고
씨앗을 뱉어낸 최초의 울음이었다
오래된 떡갈나무 창고 옆에
나뭇가지 같은 방 하나 들였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들여놓고 싶었다
지붕이 비었을 때엔 빗소리가 크다
빈 아궁이에 솔가지 불을 밀어 넣으면
물이 날아올랐다
물기를 머금고 사는 것들이
방안을 채울 줄 알았다
아궁이 옆에서 뜨거운 울음의 족보를 본다
실어 온 씨앗으로 바람은 키 작은 뽕나무를 키웠다
초여름, 초록이 타고 푸른 연기가 날아오르고
까만 오디가 달렸다
문을 세웠더니 바깥이 들어와
빈 방이 되었다
바람의 어느 층이 키운 나무들은 흰 연기를 품고 있다
어제는 나무의 안쪽이 자라고 오늘
나무의 바깥이 자랐다
나무는 어디가 문일까
문을 열어 놓은 나무들마다
초록의 연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다
- 2011 부산일보 당선작
-----------
독설/ 박해람
-지나간 다정함이란 곁의 어린 쓸쓸함만도 못하다
나는 내 독설에 기대어 견디는 중이다
한여름 푸른 독설을 견디기 위해
벌레가 뱉어놓은 검은 허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독설이 들락거리면서 흔들리는 나뭇잎이 있었고
얇은 바람 한 장 같던 흰 얼굴이 맥주캔처럼 구겨질 뿐이던 여름
파랗게 흔들리던 것들은 몸서리치고 있는 중이었을까
한없이 흔들리는 그늘만 자랐다
알고 보면 걸음은 다 땅에 박혀 뿌리를 키우는 것들이고, 뽑힌 걸음의 흔적들만 가득한 천지
너는 왜
몸밖에 없는 것들에게 왜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냐
아무리 흔들려도 저 木家의 밖은
멀리 떠나지 않고
흔들리는 푸른 것들은 바람의 고삐에 묶여 있다
고삐는 가고 깊은 곳으로 팽팽하다
바람의 고삐에 가끔 몸이 휘어지지만
결국 끌려가지 못하고 버티는 나무의 머리채가 떨구는
그악스런 독설들
끝이 없으니 영영 푸르다/그 푸른 바삭거림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바람의 혀/떨어진 땅이 검게 익어가는 철/여물지 않은 열매들의 자포자기라는 맛/뒤척임이 너무 겹쳐셔 쓰라릴 때/그 사이가 묻은 채 떨어지는 독설/혼자 말라가는 나무의 푸른 혀.
반짝이는 것들은 눈동자를 익어가게 한다.
스스로 낙하한 검은 그늘들은 다 땅의 눈동자일 텐데
떨어져 제 눈을 가릴,
매달려 떨고 있는 저 으스스한 독설들
두 달 치 알약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서는데
온몸에 돋는 이 독의 수런거림들
나에게 알약은 으스스 떨리는 저 나무에 묻어 있는 햇빝
너무 짧게 빛나는 약효.
벌레가 다녀간
나무 밑 亂廛이 시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