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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희곡은 운문(韻文)으로 쓰는 것이 통례였고, 극시는 희곡 일반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근세문학에서 산문문학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산문극도 점차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근대극 확립 이후 극시는 단순히 희곡의 한 장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상연을 의식하지 않은 시인의 작품을 극시, 무대를 의식해서 쓴 작품을 시극(poetic drama)이라고 하였다. J.드라이든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극시론(劇詩論)》을 썼으며, 그 신판(新版)에 붙여진 T.S.엘리엇의 에세이는 《시극론(詩劇論)》이 되었다. 엘리엇을 중심으로 한 이 시극의 부흥은 20세기 영국문학의 가장 현저한 현상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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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운율을 갖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내재율(內在律)의 조화만 맞게 쓰는 산문 형식의 서정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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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발흥기·재건기의 민족이나 국가의 웅대한 정신을 신(神)이나 영웅을 중심으로 하여 읊은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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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족이나 고유의 신화나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서사시도 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사시의 흐름은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시(詩)로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사 이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서사시로서는 BC 800년경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있다. 이들 작품은 다 같이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그리스 전체의 국민적 서사시일 뿐만 아니라 그후 모든 서사시의 전형이 되었으며 현대에까지 서유럽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는 헤시오도스에 의해서도 읊어졌는데 '테바이 이야기' 또는 '아루호(號)의 원정' 등이 서사시의 주제가 되었다. 그 후 로마에서는 베르길리우스(BC 1세기)의 《아에네이스》가 유명한데 로마 문학 황금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중세에서는 프랑스의 기사 이야기인 《롤랑의 노래》, 북유럽의 《에다》, 영국의 《베어울프》 그리고 독일의 비극적 국민시 《니벨룽겐의 노래》가 있다. 《에다》는 북유럽 신화와 영웅전설을 집대성한 것이며 《베어울프》는 주인공이 괴물과 화룡(火龍)을 퇴치하는 무용담이다. 영국에는 아더왕의 전설에서 딴 맬로리의 《아더왕의 죽음》과 초서의 《캔터베리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단테의 《신곡(神曲)》과 밀턴의 《실낙원(失樂園)》은 세계문학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두 작품이 모두 특이한 이야기시인데 《신곡》은 지옥편·연옥편·천국편의 3부로 되어 있고 단테 자신이 처음에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다음에는 애인 베아트리체의 선도를 받아 그들의 미지의 세계를 순력(巡歷)하는 이야기이며, 《실낙원》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원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종교시이다.
근세에는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아》, 바이런의 《돈 후안》, 스콧의 《호수의 여인》, 하이네의 《아타 트롤》 등의 발라드와 이야기시가 있으나 이들 작품은 서사시와 서정시의 중간적 존재라고 하는 편이 옳으며, 서사시 자체는 사회의 근대화에 따라 산문소설로 변용한다.
한국의 서사시로는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현대 작품으로는 서사시다운 것이 거의 없으나 3·1 운동 이후 한때 유행한 김동환(金東煥)의 《국경(國境)의 밤》 《승천(昇天)하는 청춘》이 있고 광복 후의 작품으로는 김용호(金容浩)의 《남해찬가(南海讚歌)》 등이 서사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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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3대 부문(서사시·서정시·극시)의 하나로 작자 자신의 감동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읊은 운문으로 된 문학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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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어의 리리크(lyric)에 해당하는데, 리리크의 어원은 하프를 닮은 고대 그리스의 악기인 리라에 맞춰서 하는 노래(리리코스)이다. 오르페우스나 바커스의 신화가 운율과 음악을 결부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악기에 의하여 불려졌다고 하지만 그것을 서정시로 볼 수는 없다. 감동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노래한 리리크는 시형(詩形)이 짧고 그 시 자체가 음악적 리듬을 지니고 있다. 이미 그리스의 여류시인 사포,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에 의해 수준 높은 음창시(吟唱詩)가 쓰여졌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등에 나타난 여러 신과 영웅들 대신, 그리스·로마의 서정시에는 인간 그 자체의 존엄(尊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서정시는 주관적인 개성의 문학인 동시에 자신의 감정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시의 장르로서 서정시가 문학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의 시인들에 의해서였는데, 인간 개인의 종교적 정조(情操)에 바탕을 둔 사랑의 노래가 번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근세에 들어와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워즈워스 등에 의해 근대 서정시는 완성되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파의 주관적·신비적 풍조는 근대 서정시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고전주의와 합리주의, 질서와 논리에 반기를 든 낭만주의파의 주장은 종교개혁이 성황을 이룬 나라들에서 가장 강렬하였다. 독일에서는 괴테와 실러가 '질풍노도(疾風怒濤:슈투름 운트 드랑)' 운동을 통하여 자아(自我)를 구가하였고, 슐레겔 형제, 브렌타노, 아이헨도르프, 하이네, 잔파울, 휠더린, 크라이스트 등이 이를 이었다.
그 후 신낭만주의 대두시대에는 독일에서는 데멜, 게오르게, 릴케, 호프만스탈 등이, 영국에서는 번스, 블레이크, 셸리, 키츠 등이, 프랑스에서는 롱사르, 라마르틴, 위고 등이 대표적 시인으로 근대 서정시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그들은 연애를 찬미하였고 생활의 기쁨과 슬픔과 고뇌를 노래하였으며, 때로는 예술지상주의자가 되었고, 때로는 탐미주의자가 되기도 하였다.
서정시의 형태는 그리스의 시형이 원형이며, 발라드[譚詩]·엘레지[悲歌]·오드[頌歌] 등의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네트(14행시)로서 단테나 페트라르카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셰익스피어도 또한 뛰어난 소네트 작가였다. 릴케의 《오르포이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그 걸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근대 서정시는 19세기 말이 되자 보들레르나 투르게네프 등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자유시 또는 산문시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근대문명의 여러 가지 모순이 예민한 시인들로부터 고전적인 시형을 빼앗았다.
한국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도솔가(兜率歌)》를 지은 월명사(月明師)를 비롯하여 역시 같은 신라 때의 최치원(崔致遠),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 조선시대에 들어와 황진이, 최근세와 현대에 걸쳐 김소월(金素月)· 한용운(韓龍雲)·정지용(鄭芝溶)·김광균(金光均)·김영랑(金永郞)·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 등을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그후에 나타난 시인들 또한 대부분 서정에 바탕을 두고 시작(詩作)을 하는 것은 시의 본령이 역시 서정시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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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또는 침통한 묵상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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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의 엘레게이아(elegeiā 애도가)에서 유래된 말로 비가 ·애가 ·만가라고도 한다. 고대 소아시아의 애도가 양식이 그리스로 전해진 것이며 엘레게이온(elegeion)이라는 2행 연구(連句)의 시형으로 쓰이고 간결하기 때문에 묘비명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형은, 로마의 시인 사이에 계승되어 카툴루스, 오비디우스 등의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다시 독일의 시인들에게 답습되었다. 그러나 근대에는 보통 내용에 중점을 두고 육친이나 친구 ·연인 등의 죽음이나 불행, 또는 실연당한 슬픔에 잠긴 심정을 읊은 시를 널리 엘레지라 부르게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괴테의 《로마 엘레지 Römische Elegien》, 밀턴의 《리시더스 Lycidas》, 토마스 그레이의 《묘반(墓畔)의 애가》, 셸리의 《아도니스 Adonis》 등이 있으며 20세기 최대의 엘레지는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Duineser Elegien》 등이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슬픔을 노래한 엘레지와는 달리 무정하고도 가혹한 여러 가지 힘에 의해 지배된 인간의 슬픔을 비가적인 상황에서 다룬 것으로 현대시에 미친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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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장중하고 열정적이며 때로는 명상적인, 비교적 장문의 서정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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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 ·부(賦) 등으로 번역된다. 그리스어의 ‘ōidē(노래)’에서 유래한 말로, 본디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뜻했으나 근대에 와서는 주로 운율을 지닌 서정시를 가리킨다. 오드에는 몇 가지 시형(詩型)이 있다. 사포 ·아나크레온의 오드는 독창용이었으나 핀다로스는 무용합창대의 동작, 즉 왼쪽회전(strophe) ·오른쪽회전(antistrophe) ·정지(epode)에 맞춘 복잡한 시형을 썼다. 그리고 호라티우스는 간소화된 형식을 사용했다. 16세기에 이르러 롱사르 ·타소 등에 의해 이 시행은 부활되고 그 후 괴테 ·휠덜린 ·위고 ·뮈세 ·푸시킨 ·밀턴 ·워즈워스 ·셸리 ·키츠 등 시인들이 즐겨 썼다. 특히 워즈워스의 《어렸을 때를 추억하여 영원의 불멸을 아는 부(賦)》는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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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상으로 정형시(定型詩)와 상대적인 입장에 서는 것으로서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으로 작자의 감정이 표현된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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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시에서는 시의 한 단위가 보(步:foot)와 행(行:line)으로 이루어지나, 자유시형은 그것이 연(聯:stanza)으로 된다. 따라서 보다 산문에 가까운 산문시도 자유시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대개는 이를 구별하여 인용한다. 자유시의 형식은 그 기원을 멀리는 성서의 《아가(雅歌)》에서 찾을 수 있고, 가까이는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산문시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1869) 서문에서 자유시 정신을 부르짖음으로써 출발하였다. 자유시가 정형시의 성립조건에서 탈피한 이유는 근대정신이 운율의 법칙이나 일정한 어수(語數)의 틀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민중의 생활과 그 율동을 함께 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또한 자유시가 대두한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계기는 음악성을 부정하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리듬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언어가 지니는 음의 의미를 통해서 형성되는 이미지의 예술성이 그 생명을 이룬다. 이를 가리켜 불규칙의 리듬, 곧 자유율(自由律) 혹은 내재율(內在律)이라고 일컫는다.
한국의 근대문학사에 있어 자유시의 첫 작품은 대개 1919년 《창조》지(誌)에 발표된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를 꼽는다. 그러나 1918년 11월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발표된 김억(金億)의 <봄>과 <봄은 간다> 등 두 작품은 이미 자유시의 형태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918년 무렵부터 한국의 현대시(現代詩)는 자유시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초창기 한국 문단에서 자유시를 창작한 주요 시인으로는 김억 ·주요한 ·남궁 벽(南宮璧) ·홍사용(洪思容) ·이상화(李相和) ·김소월(金素月) ·한용운(韓龍雲) ·김동환(金東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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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는 노래로 불리는 것으로, 무용이나 음악과 일체적인 것이어서 리듬이나 운율을 지니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자유시 ·산문시가 등장하면서부터 정형시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이는 원래 일정한 수의 음보(音步)와 악센트, 소음절(小音節)로 이루어지는 시행(詩行)과 연구(聯句), 그리고 그 연구를 반복하는 형식이었다.
유럽의 시는 음률과 압운의 기교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수많은 정형을 발생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헥사미터(hexameter:6步格)였으며, 단테의 《신곡》은 테르차리마(terzarima:3韻句法)로 쓰였다. 프랑스 고전비극의 시형(詩型)은 알렉상드랭(alexandrin:6脚 12音節)이었고, 셰익스피어는 주로 블랭크 버스(blank-verse:弱强脚 5개로 이루어지는 無韻詩)로 그의 작품을 썼다. 남부 프랑스의 음유시인들에 의해서 발생한 발라드는 뒤에 샤를 도를레앙이나 F.비용 등이 그것을 계승하였고,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소네트의 시형은 단테, 페트라르카 이후 유럽 전역에 유행되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에 율시(律詩) ·절구(絶句)의 시형이 완성되었는데, 여기에는 압운(押韻)과 평측(平仄) 등 엄격한 작시상(作詩上)의 규칙이 따랐다. 주대(周代)의 《시경(詩經)》 이래 자유로이 읊었던 고체시(古體詩)에 대하여 이것을 근체시(近體詩)라 일컬으며, 이백(李白) ·왕유(王維) ·두보(杜甫) 등의 대시인이 배출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거의 자수율(字數律)에 지배되며, 조선시대의 시조를 비롯하여 개화기 이후의 창가 ·가요 등이 모두 정형시 유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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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언어의 배열에 일정한 규율이 있는 글을 말하는데, 시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산문(散文)과 대립된다. 글이란 원래 그 흥취가 고조되면 절로 율동을 지니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물이 지니는 음악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운문은 특히 언어의 운율을 적절히 활용해서 효과를 거둔다. 운율은 일상의 세계를 어떤 미묘한 커튼으로 둘러싸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뜬 황홀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정형시와 자유시를 막론하고 그것이 시가 되려면 반드시 운율을 갖추어야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 운문이라고 할 때, 그것은 시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산문시와 같이 운문이 아닌 시가 있을 수 있으며 또 운문이면서도 시적(詩的)이 아닌 요소를 지닌 글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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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漢字)를 두자운( 頭子韻) 및 중심모음( 中心母音)·말음( 末音)·악센트 등으로 나누었을 때 후자의 그룹을 운이라고 하는데, 수( 隋)·당( 唐) 시대에는 200 이상 있었으나, 원( 元)·명( 明) 이후에는 반으로 줄었다. 율은 한시( 漢詩)와 같은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음악적 가락이라고 풀이하여도 좋을 듯하다. 한국의 시조( 時調)는 음수( 音數)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을 음수율이라 한다. "태산이⑶ 높다 하되⑷ 하늘 아래⑷ 뫼이로다⑷. 오르고⑶ 또 오르면⑷ 못 오를 리⑷ 없건마는⑷, 사람이⑶ 제 아니 오르고⑹ 뫼만 높다⑷ 하더라⑶"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장( 初章) 3·4·3⑷·4, 중장( 中章) 3·4·3⑷·4, 종장( 終章) 3·5⑹·4·3으로 되어 있다. 영시에서는 운은 라임(rime, rhyme)이며 율은 리듬(rhythm)이다. 고대 영시에서는 게르만계의 두운( 頭韻)을 써서 각 행의 가운데에 휴지부를 두고 전반( 前半)에 둘, 후반에는 하나의 두운이 있었다. 또한 고대 영시의 리듬의 종류는 정설( 定說)은 없으나 다섯 가지라고 한다. 각운( 脚韻)을 밟게 된 것은 중세 영시 이후로서 노르만정복(1066) 이후에 두운을 대신하여 프랑스계의 각운이 들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운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또한 영국의 시는 복잡한 율동(리듬)·율격(미터)·음질( 音質)· 스탠자(stanza: 聯)를 짜 맞추어 만들어진다. 영시의 중심은 리듬인데 이것은 영어의 특색인 강약 악센트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 시( 詩:고대 라틴어까지 포함)에서는 모음의 장단( 長短)으로 리듬을 형성한다. 또한, 프랑스어를 비롯하여 로망스어파(라틴어를 공통의 모어로 하여 갈라져 나온 언어, 즉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스파냐어 등)에서는 주로 음절( 音節)을 몇 개씩 얽어매서 만든다. 한국의 시도 이에 속할 것이다. 운율에는 자유율( 自由律)· 내재율( 內在律)·심리율( 心理律) 등이 있다. 넓은 의미의 음악적 효과로 간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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