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라잡이
저녁노을 속에서 나는
초라한 봇짐을 메고 끝없이 길을 걷는
싸구려 보따리장수
거친 땅에 굽이치는 강
가파른 바위산 넘고
불볕 부어내리는 황무지에서 휘늘어진 나는
고독감이 뼈에 저린 절름발이
가로막는 가시덤불에
발걸음은 꿈속처럼 휘청거리고,
낭만을 꿈꾸며
끝없이 뚫고 가는
갈증과 굶주림의 열풍 속
잿빛 머릿속을 호리는 울음소리
허허로운 들판 푸른 달빛 아래
눈을 반뜩이며 길장승처럼 웃고 있는
긴 꼬리 붉은여우,
감쪽같은 눈가림에 보따리를 잃고
절룩거리며 발길을 돌린다
붉은 황혼에 늘 꿈꾸던 피안을 찾아
다시 되돌아 비바람 몰아치는
불모의 황무지 안으로.
-- 시와사람 94호(2019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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