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2016 신춘문예 당선작 본문
화해花蟹
하송
냄비뚜껑을 열자 꽃처럼 붉은 꽃게가
철갑을 하고 있다
건들기만 하면 잘라버리겠다는 듯
엄지발을 치켜든다
뭉툭한 가위로 발을 절단하자
소리를 지르는 것은 꽃게가 아니라
가위였다
골수가 울컥 쏟아지자
바다는 잠잠했다
사는 일은 파도가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갯벌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것
꽃게, 파도가 거칠수록
두 눈 똑바로 뜨고 등딱지에 힘을 준다
한 평생 꽃처럼 배를 보이지 않는 것이 꽃게다
섬 하나가 안테나를 세우고
육지로 나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지
바닷바람에 허리가 꼿꼿하다
바다를 버린 꽃게, 절대 바다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해花蟹 : 꽃게
◆ 당선소감
꽃게! 말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속살이 꽉 찬 꽃게는 담백하면서도 입안에 오래도록 남는 특유의 향이 으뜸입니다. 꽃게는 찜, 탕, 게장, 무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합니다. 꽃게는 꽃처럼 예쁘게 생겨서 꽃게가 아니라 삶으면 빨개져서 꽃게입니다. 잘 익은 꽃게의 두 집게발이 치켜든 가위 같습니다. 작게는 쓸데없이 웃자란 욕심과 아집으로부터와 크게는 부정부패까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는 듯이 집게발이 단호합니다.
꽃게에 대한 시를 완성하고 제목을 정하는데 적잖게 고심을 했습니다. 꽃게의 옛 이름은 ‘곳게’입니다. 곳은 송곳(錐)으로 집게다리에 돋은 가시가 송곳처럼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암녹색 바탕에 구름무늬가 있는 등딱지는 옆으로 퍼진 마름모꼴로 두 집게발은 크고 길며 억세게 생겼습니다. 꽃게를 한자어로 시해矢蟹· 유모· 발도撥棹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것칠에 · 살궤 · 곳게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는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되어 결국 ‘화해花蟹’라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면 ‘화해’는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적대 감정을 푼다는 뜻도 있어서 나름대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는 범접할 수 없는 학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태산보다 높다는 생각으로 무척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절차탁마는 절제의 미덕을 알게 했고 확장된 사유로 시의 발자국을 따라가는데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고통이라면 고통의 절반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때로 결핍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결핍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시에는 혼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해花蟹를 계기 삼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 ‘화해花蟹’를 당선시켜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 [심사평]
김동수<미당문학회장,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금년에 600여 편의 운문이 응모하였다. 시조와 동시, 한시 등,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였다. 이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민옥순의 <헛발을 딛다>와 조양비의 <낯선 폭설>, 황병욱의 <포도밭 사막> 그리고 지연의 <다르미타>와 하송의 <화해>였다.
민옥순의 <헛발을 딛다>는 조각이 난 접시의 형상을 치밀한 묘사와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선을 끌었고, 조양비의 <낯선 폭설> 또한 다소 보헤미안적 풍경을 능란하게 묘사하였다. 두 작품 모두 언어의 직조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직조와 묘사가 내용의 공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황병욱의 <포도밭 사막>은 흉작으로 남은 농부의 신산한 삶을 짜임새 있는 구성과 미감으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3연의 ‘번화가’와 끝 연의 ‘열매를 맺는다.’는 돌연한 시어의 혼란과 상투적 인식이 새로운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끝까지 고심했던 작품은 지연의 <다르미타>와 하송의 <화해>였다. 지연의 작품은 쉬르레알리즘 기법을 연상케 하는 자유분방한 에스프리와 비유 그리고 감각적 묘사가 그간의 문학적 역량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다르미타>라는 제목의 낯설음에서 오는 이질감이 끝내 ‘불꽃의 접점’을 찾지 못해 아쉬웠다.
<화해>는 ‘꽃게와 바다’라는 비유와 상징의 공간 속에서 ‘갯벌 속으로∼몸을 숨기’며 오늘의 고난을 극복해가고자 하는 화자의 자기 고백적 주문이 긴장과 이완의 율조 속에서 하나의 ‘빛’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한 평생 배를 보이 않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연함에서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된다.
평이한 듯 보이나 체험이 육화된 그 평이함이 오히려 어떤 결기와 진정성으로 느껴져 앞으로의 가능성에 믿음을 갖고 당선작으로 올렸다. 보다 정진하여 격조와 품위를 더한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16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입수
김재필
하염없이 눈물 쏟는 애인을 또 하염없는 입맞춤으로 달래본 사람이 알 것이다 같은 이에게 다른 피가 돌 때가 있단 사실을
지뢰를 밟았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아직 발 떼지 않았다는 것 너는 위험한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른다
너도 이제 그만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 그러나 침묵하고 싶지 않을 때에야 침묵다운 무거움이 온다는 걸 우린 이제 알고 있다
네 혀에 도달할 문장을 기다린다 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늘어지는 고드름처럼 오랠수록 흉기가 되는
조금씩 심장 가까이 이 겨울 속으로 완전히 입수하기 전에
당선소감 함께 해줬던 사람에게 보상 되길 바라며 써
Soli Deo Gloria.
준모 형께 감사하다. 이런 날이 오면 가장 먼저 형의 이름을 쓰고 싶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언어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무능이 허락되기 전까지 어떻게 견뎌야 할까. 이런 태도가 모두에게 중요할 수 없으므로 농담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언어를 삼키기 때문에 외롭단 걸 알게 되면 농담은 미운 애인 같다. 만약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을 인간이 언어를 연마한다면, 그런 생은 도대체 어떤 수수께끼의 대답이 되는 건지 생각하며 웃었다. 그런 세계에 누가 거주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언젠가 그런 인간이 방문했을 때, 그에게 필요한 대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랜 시간 함께 해줬던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되길 바라며 썼다.
뽑아주신 황동규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김기택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가능성을 봐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마음의 빚을 덜게 해주심에 감사하다. 스승이신 박찬일 교수님께 감사하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기를 바란다. 졸업 후에도 이끌어 주신 이형우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제자라 말하기엔 민망하여 성함을 적진 않지만 청강을 허락해주셨던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인정이란 걸 가르쳐주신 김미향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하다. 역시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되신다면 행복할 거 같다. 더 많은 분께 감사하고 있다. 말 대신 찾아뵙는 걸로 대신하겠다.
△1988년 전북 무주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최근 응모작 추상·관념의 유희 과해 … ‘입수’ 소통의 모호성 벗어나
최근 신춘문예 응모 시는 갈수록 모호성이 두드러지는 부정적 특성을 지닌다. 구체에서 일탈된 추상과 관념의 언어 유희가 지나쳐 소통의 길이 꽉 막혀 있다. 언어와 언어의 시적 관계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도대체 무엇을 왜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배배 꼬인 언어의 꽈배기를 맛도 보지 못하고 마냥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도 인간을 위해 쓰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인간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갈수록 그 소통의 길이 막혀있다. 이제는 시의 불통마저도 유행인가. 불통으로 훈련된 투고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분별없는 불통의 세계에서 분별 있는 소통의 세계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4편이었다. ‘패러글라이딩 하는 새’(김영미)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보다 “날개를 펼칠 때보다 접을 때가/ 더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등의 통속적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강물학교’(진창윤)는 강물을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에 대한 진술적 묘사가 진부하고 지루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먼저 탈락하였다. ‘평행한 세계’(강은재) 또한 꿈속과 꿈 밖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남의 세계가 펼쳐져 있으나 결국 “멀리 있어도 우리는 하나인 것 같다” “나도 내가 좋아질 때가 있다 이런 것은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등의 통속적 산문성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입수(入水)’(김재필)는 비교적 소통의 모호성에서 벗어난 시다. 내가 너(애인)의 사랑의 강물 속으로 입수하는 과정의 순간을 짧으나마 극명하게 그렸다. ‘지뢰를 밟았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아직 발 떼지 않았다는 것/ 너는 위험한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른다’라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지뢰를 밟았을 때 발을 떼면 생명을 잃게 되므로 발을 떼지 않고 있는 상태, 그 절체절명한 상태에서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이 시의 전체적 정조를 이룬다. 다른 시에 비해 작품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통이 가능한 시라는 장점에 더 마음이 기울어져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시를 쓰는 일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므로 당선자는 남다른 노력을 통해 한국시단을 풍요롭게 꽃피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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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양을 찾아서 구녹원 마침내 양은 사라졌다 한 의식을 잃고서 나는 은주발에 담긴 눈*이 되고 싶었다 갈피가 다 바랜 경전 속에 없던 신이 밑창 닳아 낮아진 가죽신 아래에서 흘렀다 눈 내리는 게르 뒤란에서 그 의식은 치루어졌지 양 한 마리는 선택되었고 모든 자연의 의식 속에서 가장 무죄한 저 걸음걸이 죽음으로 걸어갈 때 누구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볼 것이다 단도가 양의 숨길을 통과하는 직전 그 눈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지고 목자牧者는 숨 털 한 올을 뽑아 속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한다 산 자에게 건너간 울음소리, 가슴에서 질척이고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 양떼구름이 언덕으로 무리 지어 지나갈 때 두루마리 편지처럼 자꾸 도사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 만나고 싶은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침상 캐시미어에 머리를 파묻고 싶었다 천년을 흐르는 구름도 있었다 양은 어디에 있을까
*벽암록 제 13 칙 파릉(巴陵)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차용. 사진<네이버 포토앨범> 나만의 나무를 찾는 사유의 길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왜 그날이 떠오를까? 달걀 3개로 석유 한 홉을 바꾸고 환한 심지를 바라보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훌쩍거렸던…. 사유하는 내 의식, 내 표현은 늘 허기졌다.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발언이다'라고 매슈 아널드 영국의 시인, 문학비평가는 말했다. 나만의 나무를 찾고 싶었다. 어쩌면 저 광활한 초원 위에서 나의 구름을 찾는 한 마리의 양이었을까?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느린 저를 사유의 길로 이끌어 주신 경기대 이지엽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지전문대 이경교 교수님, 열린시학아카데미 하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와 길, `아카데미' 시우님들 친구분들 모두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다섯 번의 장례의식을 치렀지만. 떠난 그 오솔길에서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더 겸허히 공부하여 좋은 작품 쓰겠습니다. △경기대 예술대학원 독서지도과 재학 심사평 신선한 상상력·큰 스케일이 마음 사로잡아
`배고픈 이름'은 잊혀져 가는 `도장'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독특한 시각과 발상으로 `불운한 가족사'를 잘 그려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적 긴장감이 떨어졌다. 제목 또한 상징성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당선작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는 오랜 숙련의 흔적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사라진' 양의 죽음을 통해 삶을 영속하게 하는 존재의 비의에 천착한다.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는 시구의 깊이,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는 신선한 상상력과 큰 스케일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진하. 이영춘시인 ![]() |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두더지 반지하 신혼방 김상현
하얀 앞발톱의, 엎어져 있는 두더지 주검 두더지는 반지하 방이 되고 있었다 잘 닦은 화이바 같은, 검은 갑옷의 벌레가 시체에 세 들어 늦깎이 신혼방을 만들고 있었다 주검이 있을 때, 짝을 맺는다는 송장벌레 저 더듬이 끝이 뭉툭한 것은 그 교감도 한때는 부딪혀 옹이 박힌 것 구린 터 속에서도 더듬거리며 전등을 갈겠지 저 등판의 빛은 그들 눈에 모닥불이 타오르는 증거다 자글자글 끓는 된장찌개 투가리, 그런 뜨거움 올린 양은밥상을 들고 거뜬히 문지방 넘는 삶 둘은 두더지를 땅에 묻을 때까지 쉬지 않고 흙을 파내려갈 테지 흙으로, 나무뿌리를 갉았을 몸을 닫고 쓰러진 밑바닥 위에 꽃 장판을 깐 다음 반지하가 지하가 된 방 안에서 서로를 쓰다듬겠지 때로는 이웃 풍뎅이 애벌레와 다툴 일도 있겠지만 샛별 같은 알을 낳고 그 아이들은 가까스로 냄새를 막은 몸의, 한 터럭까지 다 뜯어먹고서야 벽 틈새에 손톱 밀어넣는 것이 햇살이었음을 알겠지 목숨이 윤이 나는 저 까만 옷의 청소부 부부 오늘 같은 초야(初夜)면, 숲 속은 달이 익어 참 부끄럽겠다
당선소감 "글쓰기로 혼 뺏겼던 한 해 소망 이뤄"
내가 글을 쓰면 잘 될 것 같으냐, 점집에 가 물을 때마다 그쪽 사람들은 말한다. 글 쪽과는 잘 맞습니다만, 그냥 취미로만 쓰라고, 쓰면서 행복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그런데 지난해 참 이상하다. 9월에 3일 간격으로 문학상을 받았다. 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과 근로자 문화예술제에서 최고상인 대통령 대상을 역시 시를 통해 받은 것이다. 정부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그저 생계의 길 위에서 줍는 법만 익힌 개미, 그런 개미 한 마리가 구름 위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그 옛날 우체국 계단에서 글 봉투를 품고 있던 한 아이의 눈망울을 생각하였다. 개미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은 그 아이의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을 닮았을 거라고 상상해보았다. 콧날이 시큰해졌다.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 신문에서 오려 벽에 붙여놓은 201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사진을 바라보았다. 2년이 흘렀고, 사진 속에 한 자리에 내가 앉아야 할 일이 생긴 것.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였다. 고백하건대, 사진 속의 저 현장 속으로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었다. 올 여름방학 기간에만 시 50편, 동시 35편, 단편소설 1편을 쓴 게 사실이었다. 혼을 빼앗겼다는 표현이 맞다. 혹시 내가 이렇게 창작에 홀려 내 정해진 팔자를 바꿔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기호지세, 호랑이를 탄 기세로 끝까지 몰아가야 한다는 생각. 도중 내려오면 호랑이에게 먹힌다는 생각을 하였다.
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 사에 감사의 말씀 올린다. 글눈을 뜨게 해주신 우석대 문창과 교수님들과 제 옆을 지켜준 문우들께 우체국 계단에서 망설이던, 낯 잘 가리는 그 아이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고 거듭 감사의 말씀 올린다. 글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점괘는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나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끝으로 (달려라 검정분필) 제자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심사평 "삶에서 희망 발견하는 시각 뛰어나"
그런 기준으로 작품을 판별할 때, 구태의연한 서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시를 꿈꾸고 있는지, 시에 끌어들인 특수한 성격의 언어들이 이 세계의 보편적이고 균형적인 감각을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발설하고 싶은 개인의 일과 발언해야 하는 집단의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것은 모두 9명의 작품이다. 말을 다루는 솜씨들이 뛰어나 다들 오랜 습작을 거쳤으리라 짐작되는 작품들이었다. 그렇지만 내면의 울림이 느껴지는 중량감은 대체로 부족해 보였다.
우리는 그 중 5명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정재돈의 <산낙지>, 이시윤의 <4분의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는 낯선 이미지를 충돌시켜 새로움을 구하고자 하는 작품들이지만 아직은 덜 익어 어색한 느낌이 강했다. 서귀옥의 <망중한>은 안정된 호흡으로 주제를 의도대로 차분하게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찌’ ‘생의 잔해들’과 같은 낡은 표현을 하루바삐 걷어낼 줄 알아야 새로운 시의 나라에 당도하리라 생각한다.
이동한의 <사과>는 깜찍하고 활달한 상상력, 군더더기 없는 언어 운용 기법이 매혹적이어서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어깨를 겨루었다. 그런데 시의 뒷부분이 공허한 말장난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결정적인 흠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당선작은 김상현의 <두더지 반지하 신혼방>으로 결정되었다. 죽은 두더지의 몸에 깃들어 사는 벌레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시각은 예사롭지 않다. 오밀조밀한 감각의 배치도 뛰어났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우리는 만만찮은 필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죽음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당선작의 온기가 이 냉랭하고 삭막한 세계의 불꽃이 되기를 빈다. |
2016 신춘한라문예 詩 당선작 팥죽
이은주
쟁반에 빚어놓은 옹심이 달이 되려면 뜨거운 솥 안에서 익어야 한다 반은 떠있고 반은 잠긴 달들 팥물을 빨아들여서 잔뜩 부풀어 있다 오늘 뜬 달엔 팥죽이 묻어 있다 붉은 저녁이 걸쭉하게 담긴 그릇마다 몇 개의 잘 익은 달이 떠있다 그릇마다 달빛이 새어 나온다 그릇 하나를 밝히는 달빛, 하마터면 달빛을 엎지를 뻔 했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죽 그릇에 달이 많이 떴었다 죽보다 달을 먼저 뜨셨다 만월이 씹히지도 않고 몰락한다 달이 하나 씩 줄어 들 때마다 어두워졌지만 오늘은 어머니의 죽 그릇에 달이 그대로 떠있다 어디로 가는 길을 비추려고 죽 그릇에 달 하나를 남겨 두었을까 달 하나를 남기는 식량 누군가에게는 달이 되고 부적이 되는 애기동지 보름으로 갈수록 살이 오른다
동짓날 밤 수십 년째 비어있는 어머니의 밤을 열어 보면 그릇하나를 밝히는 얼음으로 빚은 달이 무수히 떠있다 해마다 오는 긴 밤을 비춰줄 달을 꺼내 놓으시는 걸까 그런 밤이어서 달이 익어 가는 걸까 저 달이 잘 익으면 드시기 좋겠다 청상은 불구의 밤을 부적으로 쓰는 달 저 달들을 골목마다 내걸고 싶다
당선소감 시에게 진 빚 시로 갚고 싶다
스스로 버려지고 스스로 상처받는 내 글은 치열하게 정진하며 돌보아야하는 미숙아다. 걸쭉하고 붉은 밤이 짧아져 가는 밤.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 아름다운 제주, 살고 싶은 제주의 한라일보사와 글을 가려주시고 선하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또 나와 시를 이야기했던 분들, 아버지 같은 오빠, 엄마 같은 언니, 언니 같은 동생, 선배 같은 친구 문희씨,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인 남편, 사랑하는 진우 정우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약력 ▷1962년 강원도 홍천 출생 ▷인천 거주 ▷'시아카데미 시회'동인
심사평 세밀한 시적 구성, 신뢰와 온기 전해져
여전히 젊은 시를 대할 때는 가슴이 뛴다. 가슴에 달이 뜨게 하는 것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함을 건네는 것도 시 한 줄의 힘이다.
단 한 편의 당선작밖에 내지 않는데도 신춘지대를 통과하고 싶은 가슴이 아직도 여전한 시대라는 점은 즐거운 고통이다. 더구나 한라일보 신춘문예는 그 지정학적 위치부터 얼마나 매력적인가. 응모작들에서는 그러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광활한 시의 숲을 헤쳐 나오면서 어디에 이러한 예비시인들이 숨어 있었던가. 고투의 흔적들을 함께 느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응모한 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짚고 가자. 신춘의 경향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작품들, 대체로는 산문시가 적지 않았다. 리듬감을 무시하거나, 현란하고 모호한 언어의 기교로 내면의 고백에 치중하고 있는 것도 거슬렸다. 간혹 내용이 허술한 경우, 정작 시가 지녀야 할 응축과 긴장성 등의 요소를 담보하지 못하거나, 내용이 있어도 감정의 과잉, 단순 발상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었다. 좋은 시는 시인의 내면과 외피를 아우르는 치열한 과정에서 탄생하지 않는가. 과연 그런 작품을 찾을 수 있을까.
당선작 '팥죽'에 이르러서 심사위원들은 망설이지 않아도 되었다. 옹심이, 그 달의 이미지를 통한 어머니의 기억은 섬세하면서도 가볍지 않았다. 탄탄한 시적 구성으로 잔잔하게 직조된 그 속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신춘의 성격처럼 신선함, 치밀함, 신뢰할 만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믿어도 좋았다. 확장된 시세계를 보이고 있는 '임관의 숲' 등 다른 경향의 세 편 역시 내공이 엿보였다.
당선작 외에 최종심까지 올라 논의된 작품들은 '망모'(홍성남) 등 네 편. '망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오래도록 정진해오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미지의 조율과 사유의 깊이 또한 엿보였으나 평면적이고 치밀함에서 조금 미흡했다. 산문시 '따뜻한 숲'(강동완), '꽃의 잠복'(이윤주)은 기교는 탁월했으나 상징과 이미지가 지나쳤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자신만의 언어의 집을 지으며 정진하고 있는 수많은 시인 지망생들에게는 오늘이 또 다른 시작의 관문이 되길 기원한다. 그리고 오늘 이 신춘의 첫 아침, 잠시나마 이 한 그릇 팥죽의 온기가, 달이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2016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둥근 길
문귀숙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당선소감 "나의 시 쓰기는 사람과 풍경을 알아가는 과정"
누군가를 왜 좋아하냐고 물을 때 난감하듯 시를 쓰는 것도 그렇다. 무엇인가 내게 다가오고 그것을 언어의 형식을 빌려 드러내면 서툴지만 시가 된다. 그렇게 십년을 쓰고 지웠다. 스무 살의 나는 빨리 늙고 싶었다. 어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괜찮다는 일에 상처받기 일쑤였다. 어른이 되면 세상이 초연하게, 바라보듯 살아지는 줄 알았다. 현실은 여전히 나를 허둥대게 한다. 하지만 이 서툰 삶이 덮어주고 안아주는 주위 사람들 덕분에 나쁘지 않다. 땅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회현실을 시의 세계로 옮겨보는 작업, 내가 그들은 안는 방법이다. 시 쓰기에 주춤대는 내 손을 잡아주는 전화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에 근무라 김치찌개를 넉넉하게 끓이고 있었다. 들 뜬 목소리의 통화가 끝나자 딸아이가 다가와 가만히 안아주었다. 늘 지켜 봐주는 가족들에게 '나 좀 멋지지 않아?' 라고 자랑하며 이 좋은 기운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일곡시회를 이끌어주시는 고재종 선생님, 광주대학 신덕룡 이은봉 선생님께 이제라도 배움에 보답을 하게 되어 기쁘다.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광남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글을 쓸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
심사평 "당선작, 詩를 밀고가는 힘 좋았다"
좋은 시는 어떤 것인가. 동서고금을 통해서 변치 않는 것은 좋은 시는 음악성(가락ㆍ리듬)과 회화성(그림ㆍ이미지)을 잘 갖추되 삶을 이끌어 올리는 힘이 엿보여야 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는 있지만 보지 못하는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데 시의 운명과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인이 되려고 하는 자는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도 동시에 담아내는 숨쉬는 그것들과 끊임없이 접신(엑스터시)하고 밀교해야 한다는 데에 시와 시인의 운명이 요구하는 그것일 터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광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작품을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온라인시대인지라 응모자들이 가히 전국적이었다. 서울, 경기, 강원, 경상, 충청, 전북을 비롯하여 광주전남에서 의욕적인 시작품이 들어왔다. 그런데 '시는 짧고 소설은 길다'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지나치게 지루한, 마치 콩트나 단편소설의 한 대목을 잘라다 놓은 것 같은 작품들이 많아 작금의 한국시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종에 오른 세 사람의 작품은 믿을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먼저 '탑의 형식' '장수하늘소의 꿈' 등의 응모자는 현대시의 특징 중의 하나인 판타지의 기법이 너무 지나치게 드러나서 시적 리얼리티 즉 감동이 따라갈 수 없었다. 다음으로 '동행' '저녁의 합석' '천년웃음' 등의 응모자는 시 속에 서정성과 서사성을 잘 교직하는 저력은 엿보였으나 삶을 눈뜨게 만드는 '아픔의 힘(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성 혹은 카타르시스의 힘이라고 말했다)'이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둥근 길' '플라잉 가이' '장구' 등 3편을 응모한 문귀숙 씨는 전체적으로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적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시를 밀어 올리는, 끌고 가는 힘(에너지) 그리고 시적 의지가 좋았다. 음악성과 회화성 그리고 민요정신(Ballad Esprit)을 두루 갖춘 점이 크게 사줄만했다. 다만 모더니티와 언어의 나이브한 참신성, 리리시즘의 부족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우리시대를 깊이있게 통과하는 담론을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동시에 보여주면서 정진하기를 기대해본다. 새해를 맞아 당선시 '둥근 길'로 출발하는 문귀숙 씨가 나름대로 꽉 찬 '만월'을 보여주고 있어 독자들을 기쁘게 할 것으로 믿는다. 축하한다.
심사평 (김준태 시인) |
201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봄
보십시오. 내게 빈 하늘을 열어 가벼운 마음 옷차림으로 흙을 밟게 하십시오 어디선가 두엄 지피는 향내 그윽하고 새살 돋는 들풀의 움직임 간지럽지 않습니까 돌아오지 않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꿀벌의 잉잉거림 속에 묻어오고 겨우내 강을 건너지 못했던 나무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아지랑이 실핏줄로 살아나지 않습니까 잃은 것이 있다면 내 뜰로 와서 찾으시지요 이제 내 뜨락에 샘을 내므로 흩어진 목숨붙이들 찾아 모으려 합니다 바람만 드나들던 수족관을 가셔내고 맑은 수면에다 튀어오르는 날빛 지느러미를 풀어놓으면 찰랑거리는 햇빛을 입고 내 생의 물보라 아름다울 겁니다 옥상에 내어걸린 빨래 나날이 눈부시어가고 누군가가 돋움발로 벗어붙힌 몸을 넘겨다 보면 산록의 묵은잠을 흔들어 놓을 아스라한 진달래향 더욱 곱지 않겠습니까 저 만치 다가오는 나무들의 길이 보이고 새순같은 배꼽을 드러낸 개구쟁이 아들놈 동화 속의 악당을 찾아 타앙 탕 말을 달리면 그 길목을 따라 몇굽이의 강이 흘러서 우리의 얼어붙은 꿈도 촉촉이 적셔지지 않겠습니까
당선소감 견뎌내기 힘든 나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 동지를 몇 시간 앞두고 퍼져있는 겨울햇살이 온누리를 물들여 가고 있다. 그 햇살의 누리를 뚫고 겨울나무의 깡마른 우듬지가 마지막 남은 허공 몇 점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우주가 품고 있는 넓고 깊은 섭리의 눈초리는 저 작은 매만짐 하나하나 마저 놓치지 않는 치밀함으로 가득해 있으리라.
당선통보를 받기 바로 전에는 내게 짐 지워진 삶의 녹록치 않음을 두고 마냥 한탄만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삶에 대한 내 나름의 고집이 있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든 나날이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비루하기 짝이 없고 손대는 족족 막히기만 했던 내 인생의 나날 가운데 참고 견디다 보니 이런 엄청난 홍복까지 주어지는 날도 있다니, 이 당선소감을 쓰고 있는 이 시간까지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이십 년 전에 나는 어느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선소감문에 백의종군하는 마음가짐으로 오직 한 길만을 걸어가겠다고 힘주어 말한 적이 있다. 그 다짐이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의 글 쓰는 일을 가로막는 많은 악조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견뎌냈다. 하지만 바늘구멍보다 뚫기 힘들다는 신춘문예 당선이 어디 일념 하나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란 말인가.
나는 이번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는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 말이다. 끝으로 이번 당선을 통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와 글 쓰는 일을 계속해나갈 명분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불교신문사에 멀리서나마 큰절을 올린다.
심사평 재주 부리지 않고 평상심 거스르지 않았다 뽑는 자는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을 바라는 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여기 나 있소” 하고 나타나는 일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이번의 응모작 가운데서 나에게 뽑혀온 작품들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을 다시 골랐다. 네 번씩이나 읽은 나머지였다. 그것이 ‘검’, ‘나무의 모든 냄새들에 대하여’, ‘돌고래 정착기’, ‘물 위에 지은 집’, ‘단풍’, ‘남술이’, ‘연보라 제비꽃’, ‘귀공’, ‘느그는 좋겠다’, ‘봄’, ‘풍경’, ‘산사에 눈이 내리면’, ‘서울 아리랑’이었다. 이 가운데서 ‘봄’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봄’의 인상은 첫째 안정감이다. 들쭉날쭉하지 않다. 재주 부리지도 않는다. 언어에 무리가 생기는 일이 드물었다. 진부한 표현이 한 두군데서 걸렸으나 작품 전체의 평상심을 그다지 거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이 작품 바로 다음에 ‘검’, ‘나무의 모든 냄새들에 대하여’가 아쉽게 뽑히지 못한 사실에 빚지고 있다. -심사평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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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정자나무를 품다
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고향 길에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만만치 않은 세상, 삶이 고달플 때
한 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글은 ‘마음의 향기’ 누군가에게 힘 됐으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뜻밖의 당선 소식에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
● 1957년 경남 거창 출생.
심사평
이번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472편)을 읽고 대부분의 시작들이 다양하고 나름대로의 개성과 새롭고 탄탄한 시세계가 엿보이기도 하였으나 아직도 신인문학상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전효정의 ‘골목의 어둠’과,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과,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 그리고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이다.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이란 작품은 철갑고래와 흰 얼굴들이 등 무늬로 번지는 고향 닮은 바다에 백합조개, 난파선을 들락거리는 해마, 강장동물의 촉수로 그려지는 해협과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을 통해서 저들의 무리와 헤엄치고 싶은 충동을 애증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엿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은 고향 길에 지나는 동구 밖의 정자나무는 마음의 고향으로 믿음의 그늘로 그리움의 터전으로 존재한다. 부모와의 삶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란 걸 일깨우고 그 앞에 서면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으로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다시일어나 시작할 용기와 힘을 주는 존재로 의미가 강한 사유의 깊이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갠지스강가의 화장터에서 인생의 허무를 보았다고 나는 결코 말하지 않겠다 차라리 타다만 인육을 기다리는 까마귀를 보았다고 말하겠다 어깨를 들썩이는 어떤 이의 붉은 눈자위를 접사렌즈로 바라보던 날이었다 2015년 9월 576시간, 볕 뜨거운 나의 인도를 일기장 갈피에 끼워 넣는다 매운 연기에 발등으로 떨어지는 내 눈물 핥던 개 한 마리를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문예사조> 300호 특집 2015년 12월 이달의 시인
조경숙 시인
강원 영월 출생 제23회 인천시민문예대전 시 부문 대상 수상 2012년『시와정신』‘진통제 외 4편’으로 등단 2014년 시집「절벽의 귀」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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