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문성해 본문
시인 문성해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귀로 듣는 눈> 당선.
수주문학대상, 해양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 .
시집 <자라> 창작과비평사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랜덤하우스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등이 있다
자라/ 문 성 해
한번도 만날 수 없었던
하얀 손의 그 임자
취한의 발길질에도
고개 한번 내밀지 않던,
한 평의 컨테이너를
등껍질처럼 둘러쓴,
깨어나보면
저 혼자 조금
호수 쪽으로 걸아나간 것 같은
지하철 역 앞
코튼 판매소
오늘 불이 나고
보았다
어서 고개를 내밀라 내밀라고,
사방에서 뿜어대는
소방차의 물줄기 속에서
눈부신 듯
조심스레 기어나오는
꼽추 여자를.
잔뜩 늘어진 티셔츠 위로
자라다 만 목덜미가
서럽도록 희게 빛나는 것을
틀니 / 문성해
웃고 있다.
물 담긴 사기그릇 속에서
흠뻑 웃고 있다.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저리 신나게 웃는 어머니를,
어금니 사이
푸른 이끼 한줄,
나 몰래 무슨 즐거움 씹어 잡수셨을까
나는 불안하다
턱이 없는 어머니가
아침이면 턱 안에서
굳게 갇힐 웃음이,
턱을 빠져나온 웃음이 밤마다
목욕탕을 뒤흔든다
저 웃음을 어머니 턱 안에서
완성시켜드리고 싶다
아랫도리 / 문성해
신생아들은 보통 아랫도리를 입히지 않는다
대신 기저귀를 채워 놓는다
내가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을 했을 때도
아랫도리는 벗겨져 있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아기처럼 조그마해져선 기저귀 하나만 달랑 차고 계셨다
사랑할 때도 아랫도리는 벗어야한다
배설이 실제적이듯이
삶이 실전에 돌입할 때는 다 아랫도리를 벗어야 한다
때문에 위대한 동화작가도
아랫도리가 물고기인 인어를 생각해내었는지 모른다
거리에 아랫도리를 가린 사람들이 의기양양 활보하고 있다
그들이 아랫도리를 벗는 날은
한없이 곱상해지고 슬퍼지고 부끄러워지고 촉촉해진다
살아가는 진액이 다 그 속에 숨겨져 있다
신문 사회면에도
아랫도리가 벗겨져 있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면
눈길을 확 끄는 그 말 속에는 분명
사람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
수건 한 장 / 문성해
수건 한 장을 덮고 아이가 잔다
수건 한 장으로 덮을 수 있는 몸이 참으로 작다
수건 한 장 속에서 아이는 참 따뜻하게도 잔다
가위눌리는 꿈도 너끈히 막아주는 수건 한 장
그것은 평소 낯을 닦을 때보다 더 크고 폭신해 보인다
수건 한 장은 지금 완벽하다
어떤 바람도 무서움도 스며들지 못한다
굴곡진 아이 몸을 휘감아 안고 수건 한 장이 가고 있는 곳
요람처럼 흔들리며 아이가 가고 있는 곳
나는 끝내 가지 못하리라
내 몸도 수건 한 장 속에 감춰질 때가 있었던가
나는 더 이상 수건과 한 몸이 되지 못한 채
아침마다 수건 속으로 부끄런 낯이나 묻을 뿐,
아이가 수건 한 장을 비늘인양 걸치고 방 전체를 유영한다
수건 한 장 속에서 아이는 지금 안전하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수건 한 장
그것을 벗겨냈을 때 아이는 천둥소리를 지르며 깰 것이다
푸른 방 / 문성해
풋완두콩 껍질 속에
다섯 개의 완두콩 방이 푸르다
완두콩을 훑노라니
껍질과 콩이 초록의 탯줄들로 연결되어 있는 게 보인다
작은 놈에서 큰놈까지 한 놈이라도 놓칠세라
껍질은 탯줄을 뻗쳐 악착같이 붙잡고 있다
밭 너머가 저수지라서였을까
엄마는 나와 동생을 나무에 묶어두었었다
해질 때까지 밭에서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고 계시던 엄마
나와 동생이 조금만 안 보여도 허겁지겁 쫓아오셨다
딴 데 가면 안된다 여기 있어야 한다
엄마가 퉁퉁 불은 젖을 동생에게 물리러 올 때까지
동생과 나는 전지전능한 줄의 반경 아래서 놀았다
엄마가 훌쳐놓은 그 줄을 타고 개미들이 내려오기도 하고
탱탱하게 당겨지면 줄은 짧게 비명을 지르기도 하였다
엄마 젖퉁이에 푸르딩딩하게 뻗친 힘줄을
동생이 빨아먹는 거라고
그래서 동생의 똥이 푸르다고 생각하던 그때
하늘 전체가 푸른 방이었다
나무도 너럭바위도 저수지도 모두 초록의 탯줄로 땅에 매달려
우리들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그때
세상은 막 물오른 완두콩 속처럼 안전하였다
푸르른 콩깍지 속에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완두콩들
방이 깨지고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몇 놈이 훌쩍 어디론가 내빼고 만다
억지로 떼어낸 젖꼭지 같은 탯줄에서
연녹색 젖이 묻어난다
밥에 대한 예의 / 문성해
폭설 내리고 한 달
나무들은 제 그늘 속에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을 매달고 있다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둔
식은 밥처럼
인근 취로 사업장에서 이곳 공원으로 찾아든 아낙들이
도시락을 먹는다
그동안 흰 눈밥이 너무 싱거웠던가
물씬 피어나는 파김치와 깻잎 장아찌 냄새에
조용하던 나뭇가지가 한순간 일렁인다
어서 흰 밥덩이를 모두 해치우고
또 보도블럭을 교체하러 가야 하는 저이들
밀어넣는 밥 숟갈이 너무 크다
크고 헐렁한 위장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나무들은 천천히 눈밥을 녹여가며 먹는다
저번 눈밥보다 맛이 어떤가 음미하면서,
서서히 뿌리가 가지로 맛을 전하면서,
제 몸의 기관들 일제히 물오르는 소릴 들으면서
나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를 갖추어
눈밥을 떠 먹는다
족제비 목도리/ 문성해
지하철 안에서
할머니 목에 두른 족제비 목도리
할머니는 점잖게 눈감고 계시고
족제비도 머리와 꼬리 동그랗게 맞댄 채
점잖게 눈감고 있다
두 손 무릎에 포개 얹고
가벼운 요동을
지그시 즐기고 계시는 할머니
목을 한 겹 결코 조르지는 않게 감고서
무슨 포근한 꿈 꾸듯 또아리 틀고 있는 족제비는
글쎄 죽은 것 같지 않은 표정이다
어느 밤거리, 뒷골목이라도
한탕 멋지게 털고 다니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입가엔 천복을 타고난다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다
지하철 안으로 추위에 절은 몸들이 꾸역꾸역 밀려든다
하루하루 내장을 채우기에도 급급한 몸들
체온을 나누려고 서로 밀착시켜온다
내장을 다 들어내고서야
불씨 하나를 품게 된 족제비
닭모가지 같은 껍질만 남은 목을
내장인 양 든든히 감싸고
풍치 / 문성해
봄이 또 슬쩍 가려나 보다
찻물이 알맞게 익을 때를 꼭 맞춰 왔던 사촌언니가
갈 때가 되었다며
우리 집 방석에서 엉덩이를 든다
갈때를 알아 방석을 비워놓는 마음이 어찌
사람뿐이랴
꽃송이들이 가지마다 헐렁하게 앉아있는 폼으로
가만가만 내 잇몸이 들뜨고
집집마다 냄새나고 누런 목련 꽃잎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현대시 (2005년 9월호)
검은 비닐 봉지들의 도시 / 문성해
1
지푸라기들이 하찮은 시대는 지났다
검은 비닐봉지들이 거리에 휘날리는 지금은,
무엇이든 버려질 수 있다는 시대다
무언가를 담은 채 발견되는 그들은
외투를 뒤집어쓴 부랑자처럼 뒤돌아보게 한다
검은 몸피 속을 더욱 궁금하게 하는 불룩한 뱃속에
반쯤 썩은 고양이와 음식 쓰레기들과
세상에서 가장 물컹하고 가장 불결한 어떤 것을 품고는
물끄러미 앉아 있을 검은 비닐봉지들
그들은 시대와 손잡은 공범임에 틀림없다
구겨진 물개 가죽처럼 하수구에 처박혀 있는 놈,
차도 한가운데로 무법자인양 뛰어든 놈,
시장 아낙들 전대 곁에 시덥잖게 매달렸다가 꽃게라도 품으면 무기가 되는 놈
그 검은 아가리 속에서 죽은 태아조차 이름을 잃고 썩어간다
전봇대 아래 우두망찰 앉아 있는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그 물을 찍어먹는 생쥐 눈알이 더욱 반들거리는 저녁
아낙들이 손에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아파트로 들어선다
2
그 한결같이 번들거리는 검은 얼굴들에게
표정을 찾아 준 무명 작가가 있었다
비명을 지르거나 뒤틀린 표정의 석고 위로 씌워진 검은 비닐봉지들
그들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과연 그런 얼굴이었을까
검은 비닐봉지들이 아득히 하늘을 날고 있다
거리의 가장 후미진 곳을 질척이던 그들이
생선 비린내와 흙부스러기를 날리며 바람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다
날다가 덜컥, 나뭇가지에 걸리면 마른 잎새 흉내를 내기도 하고
대담한 놈들은 검은 꽃을 피우기도 한다
더 이상 무언가를 담지 않아도 될 구겨진 허파 속으로
이제는 바람이 고개를 디밀고 들어선다
《문학마당》2003년 겨울호
귀로 듣는 눈 / 문성해
눈이 온다
시장 좌판 위 오래된 천막처럼 축 내려 앉은 하늘
허드레 눈이 시장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온다
쳐내도 쳐내도 달려드는 무리들에 섞여
질긴 몸뚱이 하나 혀처럼 옷에 달라붙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실밥을 따라 떨어진다
그것은 눈송이 하나가 내게 하고 싶은 말
길바닥에 하고 싶은 말들이 흥건하다
행인 하나 쿵, 하고 미끄러진다
일어선 그가 다시 귀 기울이는 자세로 걸어간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커다란 말씀 하나가
철퍼덕, 길바닥에 떨어진다
뒤돌아보는 개의 눈빛이
무언가 읽었다는 듯 한참 깊어 있다
개털 위에도 나무에도 지붕에도 하얀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까만 머리통의 사람들만 그것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길바닥에 흥건하게 버려진 말들이
시커멓게 뭉개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더 그리워해야 하나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깨지지 않는 거울 / 문성해
빗방울들 손과 손을 맞잡고 질펀하게 누워 있다
검은 거울을 만들고 있다
거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거리의 모든 것을 비춘다
먹구름이 지나가고 웅성거리며 가로수들이 걸어들어간다
어깨를 접은 건물이 거울 속에 웅크리고 있다
개미들이 거울을 벗어나기 위해 사투 중이다
거울 한복판에서 죽은 세포를 발견하게 될 때의 경악!
사람들은 오래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붙들리게 된다
거울은 깨져야 한다
깨지는 일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듯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거울은 얼굴을 흩뜨리며 깨지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튀어나간 물 파편들은 또다른 거울을 만들 뿐,
복제거울이 판치는 거리를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움켜 잡은 채 빠르게 귀가하고 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움푹움푹 골이 패이는 거울
깨질 듯 끝내 깨지지는 못하고
사람들 얼굴에도 들러붙어
번질거리기 시작한다
이화식당
/ 문성해
벌레 먹은 잎사귀들이
늙은 그늘을 들여앉혔다
뒤틀린 가지와 가지 사이로
차양이 둘러쳐지고
평상이 들어서고
늙은 사내들이 모여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신다
이곳에 배나무가 있었는지는 겨우
'이화'라는 간판에서나 알 수 있을 뿐,
이화란 이름의 여자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사내와 배가 맞아
어딘가로 떠났다는 풍문이 들리기도 하는 이곳
이제 그리운 이화는
화투 패를 돌리는
러닝 차림 사내들의 음담에서나 간혹 들려올 뿐,
오랫동안 붙임인 배나무
봄이면 몇송이 잊혀졌던 배꽃을
찔끔찔끔 매달아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사내들은 이곳이 배밭이었다는 사실을
오줌발 끝에 진저리치며 잠시 확인할 뿐,
오래전에 꿰매버린 그것을
서둘러 바지춤에 집어넣는다
백열등 빛에 가지가 뒤틀리고
지린내와 가스불에
잎사귀가 까맣게 타들어가던 배나무들
남쪽 어딘가에서
달고 순한 자식 농사를 잘 짓고 산다는
'이화'라는 여자의 풍문을 들은 그해는
물혹처럼 매달린
시퍼런 열매들을
제 것인 줄도 모르고 떨어뜨리곤 하는 것이었다
거위들 / 문성해
호숫가에 거위 한 쌍이
기다란 목을 하고 서 있다
막대기 같은 두 개의 다리가 땅을 딛고
좀더 굵은 막대기 같은 목이 한 개 허공을 버팅기고 있다
멀리서 보면
허공에서 내려온 굵은 호스가
땅으로 연결된 두 개의 호스로
내용물을 쏟지 못하고 둥그렇게 부풀어 있는 형상이다
포화상태인지
이마 있는 데가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다
닭이나 오리
거위나 타조들처럼
풍만하게 몸뚱이만 부풀어 있는 것들에게선
치욕의 냄새가 난다
무언가 땅 속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축적된
거대 자본의 냄새가 난다
거위는 거대한 포켓인 몸 속에
날개를 숨기고
바람과 구름과 물살도 다 숨기고
앞으로 쳐들어올 칼날과 비명도
얼마든지 다 비축할 수 있다는 듯
자못 의연히 서 있다
시안 <2006년 봄호)
플라스틱 러브 / 문성해
그녀는 매일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통들을 씻네
쪼그리고 앉은 엉덩이 밑에도 빨간 플라스틱 통이 깔려 있네
언제부턴가 모든 것이 플라스틱으로 바뀐 집 안에서
그녀는 매일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음식을 만드네
아침은 플라스틱 라이스버그
점심은 플라스틱 김밥과 플라스틱 가재구이
저녁은 플라스틱 계란말이에 플라스틱 미트 소스
매일 가스불에 음식을 만들지만
매캐한 플라스틱 타는 냄새만 진동할 뿐,
아이들이 플라스틱 완구 집 속에서 노네
남자 아이는 플라스틱 칼을 휘두르며 장군을 꿈꾸고
여자 아이는 플라스틱 아기를 잠재우며 엄마를 꿈꾸지만,
어느 날,
그녀는 플라스틱 침대에 눌러붙은 아이들을 발견하네
플라스틱들 사이에서 아직도 늙지 않은 그녀,
불에 데이면 새카맣게 눌러붙을 뿐
그녀는 상처가 나지 않는 살을 가졌네
유심 (2003년 봄호)
의무기록실의 K양
/ 문성해
K양은 대학 병원 지하 3층 의무기록실에서 일을 한다
하루 종일 도서관처럼 빼곡한 책장 사이로 차트를 찾으며 돌아다닌다
걸려오는 전화도 매양 누구누구의 차트를 찾아달라는 내용들뿐,
K양은 맞선 볼 때도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차트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한 아기가 태어날 때 이곳에서는 이름보다도 먼저 차트가 준비된다
사람은 죽어도 차트는 남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
가족보다 환자의 뜨거운 피와 살보다
더 자세히 아픔의 경로를 잘 알고 있는 저 차트들
그녀는 출근 며칠 만에 알았다
사람의 나이완 상관없이 굵어지는 차트도 있다는 것을,
간혹 성경처럼 두꺼운 그것을 볼 때마다
그녀는 어떤 거룩한 말씀보다 더 절규 가득 찬 말들을 읽어내곤 전율한다
온갖 병명들 사이에서 운 좋게도 아직 자신의 차트를 갖지 못한 그녀
혹시 모른다
어디선가 자신도 모르게 은밀하게 그것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불을 끄면 캄캄한 동굴로 바뀌는 이곳으로 그녀는 아침마다 출근을 한다
밤사이에 또 어떤 병명들이 태어났을까
두근거리는 얼굴로 기다리는 저 편철(編綴)된 병력들
그녀는 수없이 빽빽한 병명들 사이에서 늙어 가는 자신을 상상하며 몸서리친다
햇빛 한 줄기 없이 꽃이 피는 것도 병이다
형광등 아래 흔하디흔한 병명 하나 없이 호접란 하나 슬며시 피어 있다
굴뚝/ 문성해
멀리
정신병동 굴뚝에서
한 줄의 희디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켜진 창문이 양귀비꽃처럼 환하다
그 속에서 구부러진 꽃술처럼 서성거리는 사람들
밤이면 각양각색의 소리로 울부짖어도
온갖 뒤범벅된 사연들이 총천연색이어도
그것들을 뒤섞어 끓여내는 굴뚝에는
언제나 명쾌한 단 한 줄의 대답이 꽂혀 있다
저 토끼털처럼 유순하고 새하얀 연기 속에는
어떤 극명함도 치열함도 숨겨져 있지 않다
밤하늘 속으로
자꾸만 흰 동물들을 빚어내는
저 굴뚝도 결국은
무뚝뚝한 병동에서 뻗어 나온 가지였던 것
아무리 소리 지르고 발광하여도
열리지 않는 창살처럼
굴뚝은 언제나 뭉게뭉게 희디흰 안녕만을 전하고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6. 5-6월호)
올챙이 / 문성해
오래된 연못 속에 올챙이들이 가득하다
버둥거리는 네 다리가 나오느라
막대기 같던 꼬리들이 잘록해져간다
앞으로 태어날 울음들이
태풍전야같이 고요하다
울음을 내 뱉기 전
저 몸은 고요한 공명통인데
소리가 빠져나갈 틈 하나 없이 완벽한 살주머니인데
올챙이는 다리를 얻는 대신
평생 울음을 팔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
여식(女息)을 만석지기에게 팔고 평생 울음을 파는 소리꾼인가 보다
지난해
전국의 이름난 폭포에서 득음(得音)을 한 소리꾼은 몇 명인가
울울창창한 초록의 비명을 이기고
득음을 한 올챙이는 또 몇 마리인가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06년 겨울호 발표
광고지 돌리는 여자
/ 문성해
신종 아파트 분양 광고지를 돌리는
늙은 여자의 뒤에서
플라타너스 한 그루
나무 밑동에
삐죽이 새파란 잎사귀 몇 개를 달고 서 있다
어서 어서 삐라를 뿌리듯 광고지를 돌리는
일일 노동자 여자의 뒤에서
아무도 받지 않는 나뭇잎 몇 장을
간절히 내밀고 서 있다
점심도 굶은 채
수 천 장의 광고지를 돌린 여자는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광고지 속의 아파트가 아닌 허름한 대문간 속으로
한번도 제대로 읽히지 못한 광고지들이
서부영화 속인 양 휘날리는 보도 위로
아직도 나뭇잎 몇 장을 흔들고 서 있는
나무 앞에서
누구인가
푸른 죽순 물이 뚝뚝 듣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읽어줄 사람은,
계간 정인문학 2006년 여름호 발표
봄 밤/ 문성해
빈 집 앞에서 쓴다.
젖빛 할로겐 등을 켜 단 목련에 대하여,
창살 박힌 담장에 하얗게 질려 있다고,
응큼한 달빛이 꽃잎 벌리려 애쓴다고,
나뭇가지를 친친 감은 가로등이 지글지글 끓는다고,
촛농처럼 떨어진 꽃잎들 창살에 꽂힌다고,
봉오리들 아우성치며 위로위로 도망친다고,
추억의 등불 켜 다는 마음 약한 꽃들이
나 같다고.
문성해의 시창작법
직통은 없다
문성해
시를 어루만지기 위해 내가 하는 짓거리들을 열람해보는 것으로 나의 졸렬하고 조금은 연민스런 시작법의 문을 열어본다. 단, 이 짓거리들은 나처럼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분들이거나 여기저기로 마음 쓰이는 데가 많은 분들에게는 적합한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긴 집중력을 타고 난 후자의 분들이라면 글 아니라 무엇을 한들 걱정이 있으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내게 있어 이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신도 없이 걷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다. 얄팍한 속임수 같은 몇 가지 재주로 세상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일로 눈이 멀어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숨어 있기 좋은 밖
나는 혼자 있기 위하여 밖을 싸돌아다닌다. 밖에서만이 유일하게 혼자가 된다는 건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집이란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곳인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있는 이유, 없는 이유 들어 집이란 곳에서 될 수 있는 한 멀어지려고 애쓰는 지도 모른다. 특히나 여성에게 집이란 쉬는 곳이라기보다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가사에 시달리는 곳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밖은 유혹이 많은 곳이고 탐닉하기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타자들을 유혹까진 못하더라도 그들을 열심히 눈 속에 담아 두는 데 탐닉한다. 수많은 사람과 사물을 만나러 밖을 싸돌아다니는 일은 시를 발견하는 일인 동시에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내가 이따금씩 펄떡이는 소재들을 건져 올리는 곳도 무한하게 열린 이 밖이라는 낚시터이다.
영감보다는 감정이입
영감이란 단어가 내게서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무작정 시가 좋아서 시인이 좋아서 시와 시인을 흉내 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영감들로 몸을 떨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고부터는(시에 정착하고부터는) 그러한 영감들은 다른 방랑자들에게로 떠났던 것 같다. 영감이란 민낯의 무욕의 상태라야 만날 수 있는 보석이다. 그것은 금광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설령 발견 해내었다 하더라도 곡괭이의 날카로운 날에 산산이 깨져 있는 게 다반사이다. 그래서 영감이란 영육이 자유로운 뮤즈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이후, 나는 그것을 기다리기보단 그것을 찾아 나서기 위해 무슨 방법이든 써야 했다. 나는 풀이든 벌레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내 전신을 그들 속으로 투영해내기 위하여 애썼다. 처음에는 나를 튕겨 내던 그것들이 내게 방석을 내밀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너무 나를 드러내서도 너무 나를 죽여서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흔들리는 풀을 바라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추운 땅 속에서 동치무 무로 박혀 있는 일도, 아무도 오지 않는 언덕에서 점점 두꺼워지는 눈외투를 껴입고 눈사람으로 서 있는 일도, 목련 나무 아래 묶여진 개 한 마리로 앉아 있는 일도 그랬다. 그들의 심정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좀체 시가 나오지 않았다. 밖을 걷고 있는 것은 나였으나 나는 풀이었고 호수였고 연꽃이었고 골목에서 요강을 안고 나오는 노파였고 벽이었고 돌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나를 불러주면 황급하게 다시 나로 돌아왔다. 이제 내게 다시 영감이 돌아오기는 그른 것 같다. 언제까지 이것이 통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이 방법을 고수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밀화 경계하기
시를 알아갈 무렵에는 연필의 촉을 갈아 무작정 세세하게 그리려 애썼다. 그게 시를 잘 쓰는 방법이고 그런 시가 잘 된 시라고 생각했다. 그렸다간 또 지우고 그렸다간 또 지우고를 수십 번, 도화지가 습기로 찢어질 정도가 되어서야 완성된 그림은 애초의 수채화가 아닌 물감 범벅의 유채화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설명하면 할수록 답답해지는 게 시라는 걸 알 턱이 없던 나는 남이 내 의도를 못 알아차릴까 봐 그렇게 했고 그렇게 안 하면 불안해했다. 여백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게 시적 발견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호젓하게 떨어진 거리에서 내 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자연스레 찾아왔다. 의자를 뒤로 한껏 빼고 글자가 겨우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보는 내 시는 남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때부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한 말들의 조합이 싫어졌다. 거의 구호 수준의 새된 내 목소리도 이젠 넌더리가 났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던가? 시에게도 이런 밀당이 필요했다. 덕분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사각지대 같은 틈에는 다른 풍경이나 추억을 끼어 넣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으니 시고 연인이고 조금 떨어져 있고 볼 일이다.
이제 나의 이 졸렬하고 연민스런 짓거리들을 기초로 하여 실제로 어떻게 시가 고쳐졌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아래는 시 「기다리는 무덤」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도입부분이다.
백영감 무덤 곁에 또 무덤 자리는
마나님 무덤 자리
죽어 홀애비가 된 백영감 무덤은
기다림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데
죽은 자가 산 자를 기다리는 모양이
그래 너 실컷 잘 놀다 오라는 듯
고양이가 햇볕에 아랫배를 축 늘어지게 누워 있는 모양으로
벌써 십수 년 째
늦봄 등산길에서 얻은 것이 이 무덤 두 개였다. 한 개는 자꾸만 무너져 누군가의 긴 인중처럼 길어지고 있는 무덤과 한 개는 그 곁에 있는 아직 사람이 들지 않은 가묘였다. 사람이 들어있는 무덤과 사람이 들지 않은 무덤 사이에 선 나는 시의 촉수가 스물스물 목구멍 위로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무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민가에선 저녁연기가 굼실굼실 올라오고 있었는데 나는 일행이 부르는 소리도 잊은 채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무너지고 있는 무덤은 십수 년 전 죽은 영감의 무덤이고 그 곁의 가묘는 십수 년 째 할멈을 기다리는 무덤이라는 것. 뒷산 아래 살고 있는 할멈은 뒷산에 기다리는 영감은 아랑곳없이 마실 길 다니길 좋아하는, 아직은 이승이 좋고 무덤 같은 건 까마득히 잊은 할멈이라는 것. 그래서 너 실컷 놀다가 와서 누우라고 하던 무덤 속 영감도 이제는 할멈이 좀 와서 곁에 누웠으면 한다는 것
그래도 이즈음 무덤 한쪽이 샐쭉이
장마가 들지도 않았는데 이지러지는 것은
마나님이
꼬쟁이 바람으로 너무 꼬장꼬장하게
마실 다니는 것이 조금은 미워 보인 모양인데
이젠 좀 그만 곁에 와서 누웠으면 하는지
늦여름 하오 무덤이
마나님 인중처럼 더욱 길어져만 가는데
여기까지는 물 만난 소설가마냥 신나게 자판을 두들겨 댔다. 내가 칼을 들고 진두지휘할 때의 쾌감을 느끼며 마치 한 편의 극본을 쓰는 것처럼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이대로 간다면 한 편의 서사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앞장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니만큼 재미가 있어야 했고 재미가 없으면 끝장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그 재미를 이어가자는 생각으로
그래도 마나님은 안즉 멀었는지
오늘 밤도 분 오른 고구마 잇몸으로 긁어가며
동네 마나님들과
죽은 영감 욕을 고명으로 얹어가며 킬킬 거립니다
뒷산 영감 다 들으라는 듯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내가 할 말 안 할 말 다 해서 내 속을 다 보인 꼴밖에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했다. 이 시는 내가 너무 깊숙이 개입하였고 너무 세밀하게 붓을 들이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팽개쳐두었다가 어느 날, 의자를 한껏 뒤로 빼고 마치 남의 시를 들여다보듯 보고 있자니 무연히 돋는 생각들이 있었다. 내가 들 무덤을 먼저 만들어놓고 사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나를 기다려주는 무덤이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러자 누군가가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무덤은 참 따뜻한 곳이고 죽음에 드는 일조차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황을 보여주고 느끼게만 해주면 될 일을 나는 괜히 있지도 않은 '백영감'이니 '마나님'까지 동원하여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재를 놓치기 싫어 그 소재만 붙잡고 늘어진 결과였고 또한 의욕이 앞선 결과였다.
생각들이 달아나기 전에 다시 시를 쓰기로 한 이상 버려질 시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죽어 홀아비가 된'과 '인중처럼 길어진'만 빼고 나머지 것은 다 지워버리기로 했다. 아깝다거나 참담하다거나 한 순간은 잠깐, 오히려 생각들이 차분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생각들은 채반에 한번 걸러진 뒤라 한결 묵직하고 듬직했다. 한 행 한 행 뒤에는 심호흡을 하듯 빽빽하게 쓰려는 욕구를 버리고 여백을 두려 했다. 한 연이 끝나면 다시 이어질 연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끌어와 넣으니 적어도 너무 뻔한 내용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처음부터 이런 식의 접근을 하리라 맘먹지만 여전히 나는 시 앞에서 그러한 전철을 또 밟고 만다. 직통인 길을 두고도 매번 비포장 길을 고단하게 덜커덕거리며 가고야 만다.
기다리는 무덤
무덤 곁에
또 무덤 자리 있었지요
누군가 미리 봐 놓은
무덤자리 있었지요
무덤 곁을 돌며
죽어 홀아비가 된 사람을 생각합니다
덩그랗게 큰 밥상 앞에서
홀로 닳은 수저를 들며
언제고 돌아갈 고향처럼
이 무덤을 떠올릴 누군가도 생각합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기다리는 무덤이었지요
긴 인중처럼 길어지던 무덤이었지요
이 속에서라면
갈비뼈 사이 파고드는 풀뿌리들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지요
당신이 미리 데워놓은
이 속에서라면
《현대시학》2014년 9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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