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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목련 립스틱/공광규

연안 燕安 2013. 10. 4. 01:24

자목련 립스틱

 

                                 공광규

 

 

불광산 장안사 화단 자목련나무가

가지마다 자주색 립스틱을 밀어올렸다

 

가까운 옥매나무에서 먼 뒷산 신갈나무 숲까지

열심히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다

 

그러나 립스틱이 묻지 않는 것이

자목련나무는 많이 속상한가보다

 

봄바람을 핑계 삼아

립스틱 밀어올린 팔을 흔들어댄다

 

그래도 자목련나무의 오랜 공덕은 헛되지 않아서

가을쯤에 입술 모양의 뒷산은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서 있을 것이다

                         —공광규 시집 『담장을 허물다』(창비, 2013)

 

 

공광규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가 있으며,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등을 펴냈다.

출처 : 시에/시에문학회
글쓴이 : 황구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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