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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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별 밭 (외 2편) / 오세영

연안 燕安 2013. 9. 8. 21:57

별 밭 (외 2편)

 

   오세영

 

 

 

소만(小滿) 되어

견우(牽牛)의 무논에는 물이 가득

찰랑거린다.

 

개굴개굴

 

어디선가 한 놈이 울자

와글와글 저글저글

일순 온 밤 하늘을 명멸하는

맹꽁이 떼

울음소리.

 

 

 

상춘(賞春)

 

 

 

현관은 잠겨 있었다.

 

봄은 소리 없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낡은 코트 한 벌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

 

뒤진 장롱과 문갑에서 털린

옷가지, 물품들로

온 방이

울긋불긋 수라장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몰리는 구경꾼들.

 

 

 

돌 4

 

 

정원 한구석에

바위 하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옆의 매화나무가 활짝 몸을 열 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앞의 라일락이 물씬 암향(暗香)

내쏟을 때도,

뒤의 장미꽃이 넌지시 추파를

던질 때도

 

없는 듯 한 가지 그림 같은 자세로

시선을 감옥에 가두는 돌,

돌은 운명처럼 제자리에

갇힌다.

 

그러나 보라.

어느 봄비 내리는 날 밤

뜰 건너

등불 화안히 켜진 창문을 바라다보며

뺨을 적시는 그의 눈물을.

 

돌은 소리 없이 울 줄도

아는 것이다.

 

 

                       —시집『별 밭의 파도 소리』(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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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대학원

출처 : 애지문학회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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