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스크랩] 별 밭 (외 2편) / 오세영 본문
별 밭 (외 2편)
오세영
소만(小滿) 되어
견우(牽牛)의 무논에는 물이 가득
찰랑거린다.
개굴개굴
어디선가 한 놈이 울자
와글와글 저글저글
일순 온 밤 하늘을 명멸하는
맹꽁이 떼
울음소리.
상춘(賞春)
현관은 잠겨 있었다.
봄은 소리 없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낡은 코트 한 벌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
뒤진 장롱과 문갑에서 털린
옷가지, 물품들로
온 방이
울긋불긋 수라장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몰리는 구경꾼들.
돌 4
정원 한구석에
바위 하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옆의 매화나무가 활짝 몸을 열 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앞의 라일락이 물씬 암향(暗香)을
내쏟을 때도,
뒤의 장미꽃이 넌지시 추파를
던질 때도
없는 듯 한 가지 그림 같은 자세로
시선을 감옥에 가두는 돌,
돌은 운명처럼 제자리에
갇힌다.
그러나 보라.
어느 봄비 내리는 날 밤
뜰 건너
등불 화안히 켜진 창문을 바라다보며
뺨을 적시는 그의 눈물을.
돌은 소리 없이 울 줄도
아는 것이다.
—시집『별 밭의 파도 소리』(2013)에서
-------------
오세영 /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대학원
출처 : 애지문학회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
'현대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점 선 면 (외 1편) / 이장욱 (0) | 2013.10.03 |
---|---|
[스크랩] 김상미의 「개죽음」감상 / 김민정 (0) | 2013.10.03 |
[스크랩] 나무들의 양식/김명수 (0) | 2013.08.09 |
[스크랩] 성미정의 「밥상에서 글 쓴다」감상 / 조재룡 (0) | 2013.08.04 |
나태주 시인 대표시선 (0) | 201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