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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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의 감정
마경덕
이제 아파트도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푸르지오, 미소지움, 백년가약, 꿈에 그린, 이 편한 세상…
집들은 감정을 결정하고 입주자를 부른다
생각이 많은 아파트는 난해한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워팰리스, 롯데캐슬베네치아, 미켈란, 쉐르빌, 아크로타워…
집들은 생각을 이마에 써 붙이고 오가며 읽게 한다
누군가 그 감정에 빠져 입주를 결심했다면
그 감정의 절반은 집의 감정인 것
문제는
집과 사람의 감정이 어긋날 때 발생한다
백년가약을 믿은 부부가 어느 날 갈라서면
순식간에, 편한 세상은 불편한 세상으로
미소는 미움으로, 푸르지오는 흐리지오로 감정을 정리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무궁화 아파트는 제 이름만큼 꽃을 심었는가
집들이 감정을 정할 때 사람이 간섭했기 때문이다
금이 가고 소음이 오르내리고 물이 새는 것은
집들의 솔직한 심정,
이제 집은 슬슬 속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마경덕 시집 『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 중에서
*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출처 : 애지문학회
글쓴이 : 김재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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