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고양이 구출작전/곽은영 본문
고양이 구출작전
곽은영
담 아래 개처럼 엎드린 눈이 나무 위에
새처럼 졸고 있던 눈이
일어선다 스르륵 일어나 걸어온다
여보, 산이 움직여요 무슨 소리야 TV보게 안경 좀 줘봐
물 발자국
찍으며 오물오물 씹던 껌을 담벼락에 붙여놓고
녹는다 녹아서 문밑으로 밀려 들어온다
집이 온통 물에 잠긴다
왜 물이 빠지지 않지?
당신, 배관공을 불러봐
그러나 배관공은 굴뚝에 빠진 고양이를 꺼내기에 바빴다
그는 굴뚝의 깊이를 알기 위해 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야옹야옹 굴뚝을 간질이며 올라오는 고양이의 대답
지하실에는 죽은 쥐가 싹튼 감자와 함께 떠다녔다
변기에 버린 금붕어가
다시 돌아왔다
냉장고 위에 올라앉은 남편이 투덜거렸다 천장이 머리에 닿았다
집을 더 높이 지어야 했어 나란히 앉은 아내가 걱정스럽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장으로 비상구를 낼 걸 그랬어요
남편은 TV 안테나를 뽑아 천장을 쿡쿡 찔러본다
이것 봐, 말랑말랑해
차오르는 물을 내려다보던 아내가 벽을 짚어본다
여보, 집이 점점 부풀고 있어요
남편은 냉장고 위 드라이버를 집어 천장을 뚫기
시작한다
당신도 좀 거들어 구두처럼 앉아만 있을 거야?
아내는 냉장고 위에서 그들의 결혼광고가 실린 신문을 찾았다
신문은
북어처럼 누렇게 잘 말라 있었다
갑자기 아내는 신문을 둘둘 말아 남편의 등과 머리를 패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양반 아야, 이게 무슨
짓이야 아프잖아
남편은 신문대롱을 빼앗아 휙 던져버렸다
날아간 신문대롱이 천장을 뚫고 배관공의 엉덩이를 찔렀다
배관공은 갑자기
솟아난 신문 굴뚝을 놀란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배관공과 부부가 반짝 눈이 마주친 순간, 휙휙휙
남편과 아내는 손을 꼭 잡고 집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배관공의 빨간 모자도 날아갔다
그들은 훌쩍 풀밭에 떨어져 아내는 부스스한 머리를 쥐고
남편은 부러진 안경다리를
잡고
돼지오줌보처럼 쭈글쭈글해진 집을 쳐다보았다
배관공은 발톱에 긁히지 않고 꺼낸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검댕이 약간
묻었을 뿐이다
야옹야옹 고양이의 나른한 윙크
- 2006 <문예중앙> 가을호
1975년 광주에서 출생
1997년 전남대 교육학과 졸업
2001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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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눈이 녹아서 집안으로 밀려들고, 굴뚝에 빠진 고양이,
변기에 금붕어가 올라오고...
연상작용을 통한 이미지의 외연 확대과정이 다소 엉뚱한
느낌의 묘사로 이어지고 있다. 단절을 통한 시적 환유의
일종이자,
화자의 동화적 상상력이 작용한 듯 싶다.
의도적인 비틀기와 현실일탈적인 몰입을 통하여 지루하고
나른한 일상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혀진다.
심각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세상사가 실은 배관공의 얼굴에
묻은 약간의 숯검댕이이거나, ‘고양이의 나른한 윙크’에
불과한 사소한 일상에 불과하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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