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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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산책

몸으로 본 서양미술

연안 燕安 2017. 9. 7. 12:52

욕망의 주체가 된 여성들

표현의 역설, 그려지지 않은 노출

“나는 비어 있음의 둘레를 그릴 거야. (……) 거기에, 바로 가장 위대한 행복과 가장 깊은 절망의 근원이 있어.” - 크리스틴 오르방, 『세상의 근원』 중에서

에곤 실레, [바이올렛 스타킹을 신고 앉아 있는 여성], 1917년 종이에 수채, 개인소장

19세기 전 서양미술사에서 여성 성기는 마치 세상에 없는 것인 양 취급되었다. 남성 성기는 대체로 아무 위화감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졌지만, 그에 반해 여성 성기는 억압되었다. 여성의 엉덩이와 유방을 드러내는 것은 허용되면서도 왜 여성 성기는 은폐된 것일까? 음모()를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음모()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여성의 음모를 그리기 터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미술사에서 음모는 여성 성기의 일부로 간주되어 왔고, 음모를 그리는 것 자체가 여성의 생식기를 그리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까닭에 여성 특유의 형태로 표현되지 못한 성기도 털도 없는, 마치 무모증에 걸린 여성들이 그림 속에서 넘쳐난다. 여성 성기는 미묘하고 섬세한 장식으로 암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추상화 혹은 무모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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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퀼리노 비너스], 로마 시대백색 대리석, 높이 96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삼미신], 2세기경대리석, 높이 119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시대 누드화까지 여성의 모습은 한 올의 털도 없이 매끄럽게 표현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 예술의 모토는 정신과 조화를 이룬 육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상화된 사실적 육체의 전범이 남성 누드였고, 여성 누드는 백 년쯤 후에 나타난다.

여성 조각에는 치모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 성기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하면 여성 성기는 추상화되어 있거나 마치 유아의 성기처럼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 ‘비너스 푸디카’라고 하여 한 손은 가슴을, 다른 한 손은 음부를 손으로 가리고 있다. 그렇게 가리는 행위는 치부임을 더욱 노출하는 행위이며, 그런 까닭에 시선은 더욱더 그곳에 머물기 마련이다. 성기가 노출되었든 아니건 간에 체모는 그려지지 않는다. 체모가 관능성을 환기시키고 수치심을 자극해 작품의 미적 수용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역사학자 다니엘라 마이어(Daniela F. Mayr)가 『털: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에서 언급한 내용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자신의 체질과는 상관없이 체모 면도라는 고문을 감당해왔고, 또 그래야만 하는 쪽은 오로지 여성들이었다."

그에 따르면 신의 몸에는 털이 없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제례의식의 하나로 제모가 행해졌고, 오늘날처럼 미용 목적으로도 제모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리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들 역시 등잔불로 털을 지져 없앴다. 로마 상류층 여성들 역시 바닷조개를 족집게처럼 사용하여 온몸에 난 털을 제거했고, 심지어 콧구멍에 난 털까지도 모조리 뽑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 시대 여성 누드가 체모가 없는 이유는 실제로 이런 유행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의 체모 제거 행위는 그녀들 자신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된 문화가 아닌, 남성들이 원하는 몸 만들기의 일환이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즉 치모가 자라지 않은 어린 여자에 대한 취향, 치모가 환기하는 두려움과 공포 혹은 원죄 의식이라는 집단무의식을 반영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류의 샘, 미적이기 보다는 미학적인

입소문으로만 알려져 있던 [세상의 근원]은 1995년 6월 오르세 미술관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주재 터키 대사 칼릴 베이(Khalil Bay)가 세상에서 가장 외설스러운 그림을 그려달라고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77)에게 직접 주문한 것이다. 초기 사진가이자 지식인인 막심 뒤 캉(Maxime Du Camp)은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베일을 걷자 실물 크기의 여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머리가 멍해진다. 정면에서 관찰해, 약간 비껴난 지점에서 그린 그림으로, 흥분을 못 이겨 경련이 인 모습이다. 뛰어난 솜씨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탈리아인의 표현을 빌면 ‘사랑으로’ 그린, 리얼리즘의 극치를 이룬 작품이다. 그러나 화가는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실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발, 다리, 허벅지, 엉덩이, 가슴, 손, 팔, 어깨, 목, 그리고 머리를 그리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뒤 캉의 언급은 당시 관객에게 미쳤을 영향과 그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세상의 근원]은 여성의 팔다리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위아래가 잘려나간 토르소처럼 가슴부터 허벅지까지만 드러낸 클로즈업한 음부가 전부다. 쿠르베는 도발적인 자세로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여성의 음부를 중심으로 복부와 가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품에서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자의 검은 음부는 흰색 옷 때문에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작품은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작품으로 다뤄지곤 한다. 또한 “여성 성기는 미적이지는 않으나 미학적”이라는 프로이트의 언급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기만큼 ‘언캐니(uncanny, 두려운 낯섦)’를 환기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곳은 우리가 태어난 장소로 아주 익숙했던 장소인데, 오이디푸스 단계를 거치면서 금기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의 근원] 역시 오르세 미술관에 걸리기 전까지 1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은폐되어 있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덮개 그림으로 철저히 위장한 채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지막 작품 소장자가 바로 라캉(Jacques Lacan)이었다는 것이다.

그림 제목과 동일한 소설 크리스틴 오르방(Christine Orban)의 『세상의 근원』에서 쿠르베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은 감히 성기를 그리지 못했어. 그건 바로 남자들이 거기서 나왔기 때문이지. 그들은 자기들이 나온 곳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 (……) 나는 네 보물을 돌려주고 싶어. 인류에게 주고 싶어."

귀스타브 쿠르베, [잠], 1866년 캔버스에 유채, 135x200cm, 파리 프티 팔레

수년 전 이 그림의 윗부분 즉 얼굴 부분만을 따로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한 미술 애호가의 집념 끝에, 이 그림이 성기만을 그린 게 아니라 성기만을 오려낸 것이라는 설이 대두되었다. 아직은 공식적인 발표가 이루어지진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그림은 처음부터 얼굴 없이 그려졌다고 믿는 편이 훨씬 더 환상적이다. 물론 쿠르베의 [잠]의 모델이 조안나라고 알려진 것처럼 그림 속 모델이 누구였는지를 파악해내는 것도 흥미롭지만, 오히려 묻어두는 편이 훨씬 더 모호하고 비의적인 상상력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누드

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 입은 마하], 1800~07년 캔버스에 유채, 95x190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 벗은 마하], 1795~1800년 캔버스에 유채, 98x191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근대 회화 최초로 여성 누드에 음모가 그려진 회화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의 [옷 벗은 마하]일 것이다. 여성 음부를 부드러운 그늘과 섬세한 터치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그림은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당시 스페인은 보수적 가톨릭 국가로 공식적으로 누드가 금지되어 있고, 왕조차도 선대의 소장품 중에 누드를 없애려고 했었다. 특히 종교재판소의 권위가 상당했는데, 그 엄격한 분위기에서 이런 작품을 제작한 고야는 결국 1815년 이단죄로 종교재판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몰수되었을 때 ‘집시’라고 불렸는데, 1815년 종교재판소가 압류했을 때 ‘마하’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마하(maja)는 마호(majo)의 여성형으로, 고야 시대 스페인에서 특이한 옷차림과 행동거지로 주목받았던 이들이다. 이들은 낮은 계급에 행실도 점잖지 않은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들의 패션만큼은 귀족들까지 모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 벗은 마하] 부분

 

고야가 이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누드를 주문한 사람은 당대 재상이자 카를로스 4세의 애인이었던 마누엘 고도이(Manuel Godoy)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이 고도이의 정부인 페피타(Pepita)라고 전해졌다.

[옷 벗은 마하]는 기존의 누워 있는 비너스의 세속적 버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비너스와는 달리 손을 머리 위로 하고, 음부를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도록 배치하였다. 게다가 그런 상태로 관람자를 당혹스러울 만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야는 이 그림 속에서 체모를 그대로 드러냈다.

체모를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체모는 정욕과 성적인 힘과 관련된다. 여성의 성적 정열은 감상자(주문자)로 하여금 만만하게 그녀를 장악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며, 스스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대부분 체모 없는 누드가 그려졌던 것이다.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에게 체모가 그려진 여성 누드는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문자는 이제 더 이상 체모 없는 이상화된 여성들이 권태롭게 느껴졌던 것일까.

어린 육체에 대한 시선

에곤 실레, [여성 누드], 1910년 종이에 수채, 잉크, 템페라, 44.3x30.6cm, 빈 벨베데레 궁전 알베르티나 미술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여성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다. 특히 어린 소녀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실레는 도시의 빠른 성장을 따라갈 수 없었던 수척하고 세련되지 못한 소외계층의 아이들에게서 매혹되었다. 그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과장되고 불편한 느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실레는 거리의 아이들 중에서도 대부분 여자 아이들을 모델로 삼았다. 마르고 신경질적이며 막 사춘기에 들어선 여자아이들은 굶주리고 불안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성에 대한 커가는 호기심이 역력해 보인다는 이유가 실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교활함과 순박함의 양면성을 보았다.

에곤 실레, [서 있는 벌거벗은 검은 머리 소녀], 1910년 종이에 수채와 연필, 56x32.5cm, 빈 벨베데레 궁전 알베르티나 미술관

 

한 소녀를 모델로 한 [서 있는 벌거벗은 검은 머리 소녀]를 보면 오렌지색으로 채색된 입술과 볼록한 유방, 특히 치모 아래 짙은 오렌지색으로 물든 세로로 도드라진 형태가 시선을 끈다. 이는 어쩌면 소녀의 실제 모습이 아닌 ‘효과적인 과장’일지도 모른다. 이즈음 실레는 또 다른 드로잉에서도 자위를 하는 소녀 등을 그리면서 노출된 음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음부를 드러낸 그림들은 단순히 대상을 정확히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레의 내면에 존재하는 성의 드라마가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니까 벌거벗은 육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실레 자신이 벌거벗은 어린 육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방식을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해 실레는 아이들의 몸이 가진 조형적 특징만을 그린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준 것이다.

에곤 실레, [성 세바스티아노 모습의 자화상], 1914년 빈 미술사 박물관

그런데 이런 소녀에 대한 남다른 실레의 취향은 곧 범죄가 되었다. 이른바 1912년 ‘노이렌바흐 사건’이다. 노이렌바흐(Neulengbach)는 도시에 싫증이 난 실레가 택한 빈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로, 실레는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마을에서는 모델인 발리 노이칠과 뻔뻔스러운 동거를 하다못해 어린아이들을 유혹해 옷을 벗겨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몸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레는 유아 납치 혐의로 구속되었고 한 달 가까이 감옥신세를 져야 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무지한 대중 앞에서 수십 개의 화살을 맞고 희생당한 순교자 성 세바스티아노의 모습으로 그렸다. 이 사건으로 실레는 빈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판도라, 성적 호기심의 말로

쥘 조제프 르페브르, [판도라], 1872캔버스에 유채, 132x63cm,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미술관

 

제우스는 인류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을 징벌하려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령을 내려 여자를 만들게 했다. 제우스는 신들에게 명하여 그녀에게 특별한 재능과 미덕을 주도록 했다. 아테나는 생명과 옷 만드는 법,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아름다움, 헤르메스는 웅변과 꾀, 아폴론은 음악을 선사했다. 그리고 제우스는 그녀에게 상자를 하나 선사하며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 1896캔버스에 유채, 152x91cm, 개인소장

 

젊은 여자의 이름은 ‘모든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의 판도라였다. 일종의 신의 종합선물세트라고나 할까. 제우스는 똑똑한 프로메테우스(‘앞을 보는 자’라는 의미)가 아닌 미련한 동생 에피메테우스(‘뒤늦게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에게 판도라를 선물로 보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온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는 형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판도라를 받아들였다. 결국 판도라는 신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온갖 형벌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가져왔던 것!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세상 모든 악과 질병이 나왔고, 마지막으로 희망만을 남겨두었다고 한다. 모든 악과 질병의 근원이 ‘상자’이고, 이 단어가 ’질’을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일까?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모두 ‘판도라의 상자’에서 ‘상자’라는 단어가 그런 중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성적 호기심은 인간 본연의 욕구이다. 아이의 첫 질문은 “아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혹은 “왜 나의 것은 엄마의 것과 다른가” 즉 성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성적 차이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곳은 금기와 억압의 장소가 된다. 그리하여 판도라의 상자에서 세상 모든 질병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질이 곧 악마라는 상징으로 해석되었음을 말한다.

알프레드 쿠빈, [지옥으로 가는 길], 1900드로잉 ⓒRussian Gothic Project 1999 ⓒAlfred Kubin

 

이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이빨 달린 자궁(vagina dentata)’이라는 개념과도 상통한다.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은 이 질로 들어서고자 할 때 자신이 커다란 위험에 놓여 있다는 묘연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알프레드 쿠빈(Alfred Kubin, 1877~1959)의 그림에는 여성에게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하는 남성의 심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여성 혐오를 바탕에 둔 농담들 중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질의 깊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이 많다. 물론 이런 비유는 판도라의 상자가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이 여성의 성기에서 나온다는 편협한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의 집단무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그들 각자의 취향

영국 라파엘전파의 이론적 수장이었던 사회비평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신혼 초 아내 에피 그레이(Effie Gray)의 음모를 보고 기겁한다. 그 후 결혼 무효 소송이 있기 전까지 6년 동안이나 아내와 성교를 기피한다. 결국 아내를 절친이자 라파엘전파 화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ls)에게 빼앗긴다. 이 엄청난 스캔들은 당시 크리미아 전쟁보다 더 센세이셔널했다. 러스킨이 아내를 빼앗긴 결정적인 사유는 그의 성적 취향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동안 찬탄해 마지않았던 우아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무모()의 여성 조각과 달리 체모가 있는 아내의 성기를 보는 것이 그에게는 낯설고 실망스럽고 두려운 체험이었다.

마르셀 뒤샹(Mrtcel Duchamp) 또한 무모증의 여자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이혼한 전 부인 리디에 사라징 레바소르(Lydie sarrazin-Levassor)는 뒤샹이 음모가 없는 여자를 좋아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뒤샹이 자기에게 체모를 밀게 했으며, 심지어 뒤샹은 모든 종류의 털에 대해 거의 병적인 공포를 지니고 있어, 자신의 몸에 난 어떤 털도 견디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뒤샹은 털이 난 사람을 약간 진화한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라고 생각했다.

주지하듯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여성의 성기는 미적이지는 않지만 미학적인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성기를 미적으로 표현한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확대된 꽃이 떠오른다. 꽃의 생식 기관과 여성 성기의 유비를 통해 드러난 꽃들. 그렇지만 기묘하게도 오키프의 꽃은 단순한 섹슈얼리티을 넘어서 꽃이 그녀에게 의미하는 수많은 생명의 메타포로도 작용한다. 그리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꽃을 크게 그린 것은 사람들이 놀라서 꽃을 더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이다.

    

발행일

발행일 : 2016. 02. 04.

출처

몸으로 본 서양미술      

  • 유경희 미술평론가,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장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는 미학을 전공하였으며,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늘 예술 그 자체보다는 예술적인 삶에 더 흥미를 가지는 까닭에 예술가들의 기질, 성격, 취향을 비롯해 무의식, 트라우마, 콤플렉스, 억압된 것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창작의 힘』 『치유의 미술관』 등이 있으며, 예술과 예술가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려주는 대중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