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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계간 시와 문화

연안 燕安 2013. 10. 17. 01:43

"우리들은 특정한 문학적 견해나 특정한 파벌을 만들지 않으며, 역량 있는 모든 시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오염된 자본과 결탁된 이미지 소비, 상품에 종속된 삶이 넓게 펼쳐지면서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여지없이 훼손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엇보다도 소외된 삶을 포용해 대동세상을 만들어 가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본다" - <시와문화> '창간사' 몇 토막

지난 2006년 가을, 1980년대 우리 문단의 일선에 서서 시를 무기로 삼아 군사독재정권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던 80년대 시인들이 <우리시대의 시인들>이란 이름을 내걸고 시낭송회를 몇 차례 여는가 싶더니, 급기야 그들 중 몇 명이 모여 계간 시전문지 <시와문화>(시와문화사)를 창간했다. 발행인 겸 편집인은 김명환(문학평론가), 편집위원은 김창규(시인), 김기중(문학평론가).

계간 시전문지 <시와문화> 편집주간 박몽구(51) 시인은 "요즈음 우리 문단과 문예지가 지나친 섹트주의와 정실주의, 파벌주의로 똘똘 뭉쳐져 있어 그곳에 속하지 않은 시인들은 시를 발표할 뜰이 없다"며 "문단의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평등과 소통의 문학'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시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전문지를 창간하게 되었다"고 23일(금) 밝혔다.

'2007년 봄호'를 통권 제1권 제1호로 창간된 <시와문화> 창간사에 따르면 지금 한국 시단은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더불어 시인 자신도 모르는 극도의 개인주의적인 시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좋은 시에 대한 판단기준 또한 애매할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시 정신의 추구는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들은 그 무엇보다도 국적 있는 시, 독자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정신적인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시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울러 지금은 지구촌 시대에 발맞추어 한국시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시의 동향을 살피고, 외국 시인들의 시세계를 탐구하여 우리 시의 체질을 튼튼히 함과 동시에 국제적인 감각도 키워내야 한다는 것.

<시와문화> 편집위원 김창규(시낭독모임 '우리시대의 시인들' 대표) 시인은 "앞으로 우리 시는 제 홀로 촛불을 들고 어둔 광야에 서서 핏대를 올리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 우리 시인들은 지구촌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함께 끌어안고 숨쉬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시의 경향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시와문화> 창간호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 편집진들
 
ⓒ 시와문화사
 

이번에 창간된 <시와문화>는 창간사 '소통의 시학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창간 특집으로 '한국시, 상생의 시학을 찾아'란 제목 아래 박몽구 시인의 '독점과 소외를 넘어 상생의 세계로', 김기중(문학평론가, 순천향대) 교수의 '새로운 시대의 시를 위하여-디지털리즘의 환상과 우울을 넘어서'가 때 묻은 한국 시단을 향해 날리는 세탁비누처럼 실려 있다.

이번 특집에서 김기중 교수는 "사이버 문화시대를 맞아 시의 대중성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은 현실의 다차원성이다, 뮤직비디오와 비디오아트 등은 각각 음악과 미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다"며, 시 또한 "다중적인 감각을 수용한 멀티포엠(멀티미디어로 창작하는 시)이나 텍스트 상호성을 강조하는 하이퍼(초월) 시와 같은 형태로 열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 문화가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다차원의 현실을 가져다주었는가 하는 점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는 시인들이 사이버 문화 시대를 맞아 사이버 문화에 따른 다차원 현실인식을 철저하게 가져야만 현실의 표현형태로서의 시적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이어 임동확 시인의 특별대담 '원로시인 김규동 선생에게 듣는다-모더니즘은 기교 아닌 살아있는 비판정신', 권선희의 '길 위의 노래들-이종암의 문학적 근황', 한명환의 '즐거운 편지와의 영상교감-영화 <편지>와 <8월의 크리스마스>', 박찬일의 '다시 자연주의에 대하여', 김창규의 '지역문학에서 민족시의 활로 찾는 시인 김용락' 등이 실려 있다.

신작시로는 원로시인 김규동의 '우리 시대의 시인들', 노창선의 '어느 저녁의 시간', 정규화의 '하나와 반', 김태수의 '베트남 시인 레지투어에게', 나종영의 '기차', 김종인의 '금오산', 황학주의 '오월, 육교 위에', 이학영의 '오래된 정원', 강세환의 '잔 나뭇가지 꺾어지던 날', 이소리의 '김치', 김교서의 '만경들', 오봉옥의 '응시', 채상근의 '급정거 풍경', 이적의 '민통선행 공영버스', 임동확의 '괴물'이 시어를 번득이고 있다.

더불어 송문헌의 '바람의 칸타타', 박희호의 '헐값의 침묵', 박규리의 '산죽', 윤의섭의 '붉은 계절', 박관서의 '간이역 소식', 표성배의 '이 밤과 좀 친해져야겠다', 김연자의 '벽', 정명순의 '인생 고스톱', 이순주의 '관리인에게 듣다', 윤미전의 '동행', 김지희의 '쌍사자 석등', 김태원의 '나목의 노래'가 실렸다.

 
▲ <시와문화> 박몽구(시인) 편집 주간
 
ⓒ 이종찬

그밖에 서평으로 이숭원의 마음의 빈 터에 수몰된 사랑-황학주', 전무용의 '판소리 사설 같은 시, 햇살 한 줌 같은 시-유용주'도 읽을거리이며, 박민규의 시에세이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와 세계의 문제시인 '실비아 플라스, 불꽃 같이 짧게 살다간 천재시인의 매혹' 등도 색다른 글맛을 북돋운다.

<시와문화> 발행인 겸 편집인 한명환 문학평론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오염된 자본과 결탁된 이미지 소비, 상품에 종속된 삶으로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여지없이 훼손당하고 있다"며, "이번 계간 시전문지 <시와문화> 창간을 계기로 우리 시단과 우리 문화,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고 살찔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와문화> 편집위원들과 시낭송모임 <우리시대 시인들>은 오는 26일(월) 저녁 6시, '(사)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 서울 Literature House, Seoul'에서 이번 계간 시전문지 <시와문화> 창간을 기념하는 시낭송회와 축하연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