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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산책로

시인 원태연 - 문인들이 숙고할 가치가 있는 사건

연안 燕安 2013. 9. 26. 17:55

출판사 알바 '150만권'팔린책 쓰고 번돈..!   [엔터&머니]작가 원태연, 초록뱀 통해 드라마 노크 "후배들은 매절계약 없길  

 

 

1992.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라는 시집 한권이 출판가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시퍼런 22살 대학생의 '순수한 사랑노래'에 열광했고, 시집은 단숨에 '밀리언셀러'로 올라섰다.

 

작가 원태연은 이렇게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원태연 시집 1집의 판매부수는 약 150만권에 달했다.

 

그러나 원태연에게 돌아온 돈은 '0'. 그는 수년전부터 출판업계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이른바 '매절계약'의 희생양이었다.

 

당시 그는 무작정 시집을 내보고 싶다며 출판사로 향했는데, 시집을 내기 위해 100만원이라는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조건으로 시집을 냈고, 인세 등 계약은 하지 못했다. 열악한 현실 때문에 헐값에 출판사에게 모든 권리를 넘겨주는 일종의 '매절계약'이었다.

 

시집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갔지만 그가 받은 돈은 수십만원 정도. 그나마도 아르바이트를 한 수고비였다. 그는 몇 권이 팔렸는지도 알지 못했고 출판사는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는 그 출판사 사장을 지금도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저도 당혹스럽긴 했지만, 어쨌거나 저를 데뷔시켜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업계 후배들은 저 같은 일을 당하면 안 되겠죠. 이런 계약은 문화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니까요"

 

'스타 시인', '성공한 작사가'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6개의 시집을 낸 뒤에는 수필가, 작사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백지영과 현빈이 불렀던 SBS 시크릿가든의 주제가 '그 여자, 그 남자', 허각이 부른 'MBC 최고의 사랑의 '나를 잊지 말아요'가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2009년에는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입봉하기도 했다.

 

 

'문단의 이단아', '장르 파괴자', '출판 재벌'등 그를 따라다니는 편견과 오해도 유난히 많다. 세상의 탐욕에 실망한 나머지 30살을 전후에는 2년간 산속을 오가며 생활하기도 했고, 가족들과 3년간 두문불출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행운도 따랐던 만큼, 세상의 눈총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는 문학계에서 늘 비주류 취급을 받았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을 뿐 주류로 대접받고 싶지도 않았구요. 하지만 돈과 큰 인연이 없었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웃음)"

 

원태연 시의 히트는 기존 문학계 원로들에게는 낯이 설고, 때론 낯을 뜨겁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한국 문학계에 한 획을 그었다. 원태연이 활용한 쉬운 필체와 순수한 감성 때문에 '원태연류()'시라는 장르 구분도 생겼다. 출판계에는 원태연 시의 아류작들, 그의 필체, 심지어 이름까지 본 딴 표절작들도 쏟아졌다.

 

"제가 봐도 헷갈리는 표절작들도 많았고, 소송하자며 변호사들이 찾아오기도 했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전 그냥 제 본능에 따라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원태연 작가는 지금 또 다른 장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력 드라마제작사 초록뱀 (1,475원 상승5 0.3%)미디어와 계약을 맺고 가슴 찡한 멜로 드라마 작품을 쓰고 있다.

 

"장르를 쉽게 넘나는 다는 시선은 솔직히 부담스럽죠. 하지만 저에게 장르가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20년간 작가로 누구보다 열심히 작품들을 써 왔으니까요"

 

원태연에게 욕심이 있다면 '열심히 산 작가로 기억되는 것'. 뭔가를 달성해 어떤 존재로 불리거나, 대박을 내는 것, 주류 취급을 받는 것도 그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지금도 지독하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드라마는 죽기 살기로 더 열심히 해야겠죠. 안방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TV를 통해 시청하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