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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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활동

8월 무덥던 여름날 대야산 산자락에서

연안 燕安 2013. 8. 18. 17:03

시원한 계곡이 산머리를 향해 달리는

문경시 가은읍 대야산

온몸에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오르는 숨 가쁜 등산길

소소리 높은 산봉우리에서

물결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실려 온

반가운 소식

지인의 고교 동창이 산자락 농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묘한 인연, 덕분에 가족과 더불어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미산 시인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문학 활동에 20년 넘는 세월 보냈다고 한다.

정성 지극한 4년이 넘어서야 남이 쓴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한여름 푸른 하늘

담쟁이덩굴이 아담한 집을 휘감아 오르고 있었다

 

 

 

 

 

이미산 시인

 

경북 문경 출생 . 2006년 <현대시> 등단,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

 

 

 

 

 

 

 

쇄골절흔

  - 소유란 구체화된 자유이다*


 
 

                        이미산

 

 

 

  행위를 끝낸 사내가 여자의 쇄골절흔을 가리킨다

  이곳은 내 것이요**

  사내의 검지 끝에 힘이 실린다 간절해진다 내 것!

  따끈하다 말랑말랑하다 나와 내 것 사이

  가까울수록 좋다 만져보고 찔러보고 냄새 맡는

  다가갈수록 그러나 멀어진다 멀리서 웃는다

  검지에 자꾸 힘이 실린다 따끈따끈한 말랑말랑한

  숨 쉬는 것, 관계의 중심, 나란히 누운

  두 개의 몸뚱어리, 말이 없는 내 몸 네 몸

  내 마음 네 마음, 내 것은 식을 줄 모르는

  신념이다 간절하고 간절하여 가늠할 수 없는

  깊이다 팔딱거리는 현실이다

  네 안에 숨 쉬는 검지마디 만큼의 수많은 내 것들,

  복사빛 볼에 멈추어있는 설렘

  연고를 묻혀 상처를 문지를 때 전신을 관통하던 그 지점

  저기, 저어기, 불확실한 운명을 향해가던 언덕길, 그때 주고받은

  가쁜 호흡의 동맹

  수백 개의 바늘에 평생을 찔리며 한 방울 피 맛에 중독되어가는

  그 작고 여린 흔들림, 지루한 울음 마비시키는 지독한 향기

  검지 끝에 와 닿는 따끈따끈한, 부분이며 전체인

  이상한 그림자 두렵고 두려운

  그러니 울타리를 쳐야지 작은 문패라도 달아야지

  이곳만은 내 것이오, 그래 부디

  내 것, 한없이 사소한

 

 

 

 

 

 * 헨리밀러 <북회귀선>에서

 ** 영화 ‘잉글리쉬페이션트’ 중 대사  

 

 

 

 

 

 

화양연화 2

 

                                           이미산

 

  

 

  그 여름, 그 가로등,

  내가 불빛 아래 서성일 때 너는 어둠 쪽에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간 만큼 꼭 그만큼 너는 물러났다 그러니까,

  전등갓 속의 불빛이 바닥 쪽으로 곤두박질치는 거리와 그 빛에 의해 드리워진 공간,

  우리의 허락된 영토는 꼭 그만큼이었을까

 

  빛과 어둠,

  경계는 완강했다

  한 걸음만 내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마주선 그림자 적시며 더듬이를 키웠다

  새벽이면 지워질 관계로 기꺼이 한 방향을 보았다

 

  무엇을 보았을까

 

  어둠을 삼킬수록 더듬이는 환하다

  그가 들숨을 쉬면 나는 그의 구석구석을 더듬는다

  그의 모퉁이에 서있는 내 그림자를 만난다, 다시 나의 들숨에 차곡차곡 그가 새겨지고

  먼 거리에서 환하게 피어나는 우리의 그림자 꽃들

 

  끝끝내 살아남을 슬픔을 위해

  우리는 일부러 소나기를 맞고 급속히 늙어갔다

 

  그 여름을 기억하는 가로등,

  그 방향 그대로 오늘도 웅웅거린다

  낮과 밤이 인사 없이 어깨를 스친다

  빛과 어둠이 타인처럼 흘러간다

[출처]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0년 올해의 좋은 시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