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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활동

산은 높고 낮음만 있다

연안 燕安 2013. 6. 26. 00:18

산은 높고 낮음만 있다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인간세상에선 모든 것들 대부분 등급이 매겨져 있다. 직업이나 물질적인 삶의 기준으로 삶에도 일류, 이류, 삼류, 끝엔 막장인생이 있다. 오래 전부터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흔드는 학교의 서열화,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평준화가 되어 있지만 대학은 변함이 없다. 운동선수도 영화배우도 가수도 화가도 작가도 시인도 재능이나 수입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분야 종사자들은 대부분 등급이 매겨진다.

  산은 높고 낮음만 있을 뿐 일류, 이류, 삼류가 없다. 낮은 산 오르기 쉽고, 짧은 시간에 운동과 휴식을 동시에 알맞게 취할 수 있어 좋다. 반면 높은 산은 오르기 어렵지만, 깊은 맛과 높은 봉우리에서 탁 트인 맛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높은 산은 높은 대로, 낮은 산은 낮은 대로 다른 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높고 낮음이 영리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리와 무관한 아마추어에게는 높고 낮은 수준만 있을 뿐, 분류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프로는 생계를 영위하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소득금액을 기준으로 일류, 이류, 삼류로 분류되는 것 같다. 영리성이 떨어지는 직업, 예술 분야에서는 어떻게 분류될까. 매우 복잡할 것 같다. 성악가와 가수가 다 같이 노래를 부르지만, 다른 직종으로 각각 따로 분류해야할 것 같다. 문학가는 어떻게 될까? 시인은 어떻게 될까? 林步 시인의 시집은수달 사냥"[문학세계사]에서 三流詩人이란 시를 보면, 분류에서 일어난 갈등과 번민을 알 수 있다.

 

 

 

삼류시인(三流詩人)

*임보

 

어느 출판사에서 엮은 詩選集

내 작품도 몇 개 끼었는데

나는 三流詩人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하기야 선집에 끼인 것만도 다행이지

내가 어이 一流를 넘보겠는가

그 흔한 하나 탄 적이 있는가

그 요란한 月評에 한번 오른 적 있는가

일년이 멀다고 시집들을 엮어내는

그 천재 시인들 틈에

30년에 겨우 몇 권 시집 짊어지고

얼간이 주제에 그래도 욕심은 있어

三流라니 입맛이 덜 좋은 모양인가.

어허 이 나이 아직도 그 욕심 지고

무거워 어이 할까

무명으로 무욕으로 눈에 띄지 않게

그렇게 가볍게 길들어 살다가

이 육신 떠나는 아픔 맴고도 질기거늘

산천초목 人事功名마다 끈 매어 놓고

그것 언제 다 자르고 떠나갈까,

인생을 사는 것도 역시 나는

三流로다.

 

 

 

임보 시인의 겸손이 깃든 시를 읽으며, 정도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세월을 사는 만큼 벗고 지고 가야하는 짐이 많다. 그 무거운 짐들을 스스로 더 무겁게 지고 살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저 욕심 없이 욕망 없이 살겠다는 다짐을 이 시를 통해 다지면서 세월이 큰 나무를 가꾸고 이루어내는 일이라 여기며 그 세월을 읽고 배울 뿐이다. 삼류에 대한 공방의 글이 있다.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읽어 볼만 하다.

 

 

 

삼류들

*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 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롱인 줄도 모르고

일류가 몸에 대해 던지는 칭찬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우쭐대는 삼류

삼류는 모임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류와 어울려 사진을 박고 일류와 더불어 밥을 먹고

일류와 섞여 농담 주고받으며 스스로 일류가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삼류

자신이 소모품인 줄도 모르고 까닭 없이 자만에 빠지는

불쌍한 삼류 사교의 지진아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노래를 마친 삼류가 무대를 내려서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삼류의 얼굴에 꽃물이 든다

삼류는 남몰래 자신이 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사실 열렬한 박수갈채는 노래 솜씨보다 월등한

그녀의 미모에게 보낸 것인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다

삼류는 일류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을 겸손하게 지나서

이류들이 앉아 있는 중간을 우아하게 지나서

삼류들이 뭉쳐 있는 후미에 뽐내듯 어깨 세우고 앉는다

삼류는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 부르다 보면

언젠가 저 중간을 넘어 저 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날이 올 거야

삼류는 가슴을 내밀어 숨을 크게 마셨다 내뿜는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삼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녀도 세상은 이미 각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요, 삐에로요,

악세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무슨 회한처럼 문득 깨달을 것이다

 

 

- 출처:현대시학, 20085월호.

 

 

 

 

 

삼류가 본 삼류들-이재무 시인의"삼류들"을 읽고/-정겸

 

 

녹산문고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신간 시집코너 앞에서,

나는 본다, 이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의 냉기보다 무수히 쏟아지는 역겨운 시집들을,

누구도 읽지 않은 일류의 시집들을.

한때 가이아의 향기가 흘렀던 이 시집의 종이,

폐지도 되기 전에 벌써

썩은 냄새를 풍기며

한물간 채소처럼 버려지고 있다.

 

아직도 착각에 빠져있는 배우들이

검정천으로 가려진 무대에서

저희들만의 유령 왕국을 만들고

북을 치고 장구도 치며 공연을 하고 있다.

대본에도 없는 왕을 옹립하고

군주가 되어 옥새도 찍히지 않은

교지를 남발하며

누구는 정승이 되어 우쭐거리고

누구는 남원고을 원님이 되어 주색잡기로 하루를 보내고

누구는 고부군수가 되어 수탈을 일삼고 있다.

 

누구는 관기가 되어 소모품처럼 노리개가 되었고

누구는 미관말직이라도 얻어 보려고 산해진미를 진상하고 있다.

매관이 성행하는 이상한 왕국

백성들이 이반한 유령 왕국

백색의 양귀비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그 향기에 취해 흔들거리는 폐허가 된 왕국

사방을 둘러보아도 관객은 없다

 

저희들끼리 웃다가 울다가

박수를 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공연을 마친 속물들이 가면을 쓰고

굶주린 승냥이로 변하여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다.

하늘을 막 날려던 가냘픈 까투리 한 마리

목덜미를 물려 피를 흘리고 있다.

 

 

 

 

삼류를 폄하한 어느 시인에게 / 복 기 완

 

잘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데

 

삼류는 자기가 삼류라는 인식을 못한다고

일류 속에 어쩌다 운 좋게 끼어 희희낙락 하지만

피에로를 의식하는 순간의 비애를 느낀다고

충고 하던데

 

삼류 없는 일류는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계층인 것을

저주스러울 정도의 운명적인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그렇게 가볍게 삼류라는 허울로 폄하해도 되는가?

일류라는 값 비싼 먹물들 모여 학연, 혈연, 지연

다 동원하여 검은 휘장 가리고 갖은 추태 부리며

접근금지 팻말 걸어놓고 배춧잎만 헤아리고 앉아서

저들끼리 나눈 감투 크기대로 차례로 얻는 밥상에

꼬리치며 박수치며, 미로를 즐기는구나.

첨단 광케이블 타고 외치는

수단이 비열하면 목적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진리를 못 찾아 허우적댄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너무 쉬워서 그대들은 잊었는가?

더러운 치매아닌 치매가 문학세계에 창궐하는구나!

그대들은 언제 한 번 따뜻한 손 내민 적 있더냐?

언제 한 번 잘한다고 추임새 넣어준 적 있더냐?

운명적으로 타고난 끼를 꺾지 못하고

차라리 저주처럼 받아드리고 사랑하는 열정이란다.

글쓰기란 것이

감정 같아서는 필을 꺾어 기름진 너의 배를 향하여

던져 버리겠지만

숙명처럼 타고난 글에 대한 애정이 그대들의 폄하보다

더 많으니 이 또한 서글프면서도 분노 하노라

오물로 채워진 혐오스런 일류보다는 진실로 양식하는

삼류로 남아 자연과 벗 삼고 풍류를 즐기리라

눈물로 잉크삼아 죽도록 사랑하는 시를 쓰며

잘난 그대들의 변방에서 체제를 부정하며 살겠노라

기웃거리지도 않을 것이며 피에로도 되지 않을 것을

세상에 공포 하노라!

 

 

[출처] 이재무의 삼류들을 읽으며|작성자 복기완

 

 

 

 

 

시인들의 끝없는 계급 논쟁, 계층화된 인간 사회의 당연지사다. 결론적으로 일류, 이류, 삼류의 분류는 업으로 밥을 먹고 사는 프로에게나 해당, 아마추어에겐 산과 마찬가지로 높고 낮은 수준만 있을 뿐이다.

  무명 무욕을 지니는 것만큼 큰 보배는 없다. 사람으로 살아가며 욕심을 내는 것은 그 무명 무욕이 주는 치졸한 대접을 면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시를 쓰면 그 만큼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과욕을 포장하여 요란한 빛을 흔드는 세상이 되어 있다. 난장 속에서 보석을 찾는 일 만큼이나 정도를 걷는 시인을 보기가 그 만큼 어려워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과묵하게 그 길을 걸으며 살았던 시인들이 있음을 상기하며 시 쓰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음을 명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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