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숨결
어느 예비 시인의 시(기성 시인을 뺨치는) 본문
벚꽃나무 스스로를 지우다
1
휘뿌리는 하얀 벚꽃잎이
분홍빛을 띠는 것은
벚꽃나무 밑 깊이 사람이 묻혀 있어
그 피를 빨아 먹고 자라기 때문이래
2
오늘 나는 살인을 했다
다시 새롭게 피어날
나 아닌 너를 위해
벚꽃잎, 피
한방울 한방울 터트리며
붉게 떨어져 땅에 박힌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다만 머리속에서 하얗게
바람이 일 었을 뿐이다
현기증에
멀리 밀리어지는 하늘이 비틀 거리다
서서히 회전하면서 검게 팽팽해져 갔다
묽어지는 마지막 한 잎까지 다 떨쳐냈다
잠겨만 가는 풍경속에서 내 피를 적셔 가며
다시 꽃 피울 너를 위해
잠들, 뿌리
깊게 깊숙히
나를 묻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다만 투명하게 부는 바람에
붉은 피 멈춰선 가지만이 꿈틀거렸을 뿐이다
갇히다
어느 마을 폐교에 버려야 할 추억을 남몰래
더듬거리며 늙어버린 칠판같은 밤에, 나는
문득 느린 비소리를 들었다. 어둠속에서
피어오르는 빗방울들을 세어보며, 빼내 문
담배의 맛이 차갑게 녹는 저녁에, 슬픔 못이겨
기울이는 소주처럼 쓰디쓴 맛을 우러냈다.
검은 유리창 너머로 오늘도 가벼움에 기억잃을
이야기들을 실어 나른 고단한 택시가 지친걸음
멈춰서서 붉게 충열된 두눈으로 나를 훑었다.
속안의 가득 내뿜은 하얀 담배연기가 나에게서
달아나다 입 꾹 다문 창문에 갇혀, 발버둥치다
쓰러져 어둠속으로 떨어지곤 했다. 옆에
앙상한 뼈마디만 남아 제 삶에 겨워 고개 꺾어
졸고 있는 가로등이 보였다. 멀리
바람에 스친듯 젖은 달빛이 흔들거렸다.
참을수 없어.
움겨쥔 그 무엇이 울렁거렸다.
순간, 유리창에서는 바깥쪽인지 안쪽인지 모를
빗방울 하나가 검은 유리에 미끄러져 어린뱀처
럼 길게 꼬리를 그리며, 꾸물꾸물 기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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