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모음

떡갈나무

연안 燕安 2012. 3. 4. 23:33

· : 떡갈나무 잎에는 - 구재기
· 저자(시인) : 구재기
· 시집명 : 천방산에 오르다가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2
· 출판사명 : 대교출판사
떡갈나무 잎에는
----千房山에 오르다가·12

구재기


밤새도록 세상의 무서운 꿈에 시달려
식은땀에 온통 몸을 적시고 뒤채이던 눈을 뜨면
허공을 내젓던 열 손가락 끝마다 타오르는 촛불
아, 한 떼의 구름무리 피어오르듯
문살에 드러나는 아스라한 山그림자

지금 어느 곳에서 길을 잃어
산새 한 마리 퍼득이는 것일까
산바람 불어와 촛불이 흔들리고
그때마다 문득문득 찢어지는 山그림자.
문을 여니 쏟아지는 별 무리들

빈 소매 반쯤 거두고 千房山에 오르다가
하늘을 우러러 간밤의 꿈속을 떨치노라면
떡갈나무 넓은 잎에 가득한 이슬,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부서지는 아침 햇살 속에, 아, 소원하던 눈물이 두어 방울

1984. 7. 19.
1985. [洪州文學] 창간호.

 

· : 떡갈나무 아래서
· 저자(시인) : 엄원용
· 시집명 :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11
· 출판사명 :
떡갈나무 아래서

엄원용

겨울 숲속에 가서 보았다.

나무와 나무, 작은 잡목들 사이에서
홀로 우뚝 서서
한 때는 푸른 빛깔로
무성하게 온 몸을 장식하던
저 늙은 떡갈나무가
어느 때부턴가
그 눈부시던 욕망의 빛깔들을
바람에 하나 하나 떨쳐버리고
차가운 겨울 밤안개 속에서
죽은 듯 산 듯
조용히 세월을 맡기고 서 있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보았다.
오랜 세월 견디고 나서
온갖 풍상에 다 드러낸
全裸의 부끄러운 몸짓으로
의연히 서 있는 저 원시의 古木.
그것은 하늘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세월을 기다리는 늙은 떡갈나무였다.

이제는
숲속 여러 雜木들 사이에서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숙연히 침묵하고 있는
저 고독한 늙은 떡갈나무.
그것은 늙으신 아버지였다.

2011. 12. 7

 

· : 떡갈나무 잎사귀 - 홍금자
· 저자(시인) : 홍금자
· 시집명 :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인 날
· 출판연도(발표연도) :
· 출판사명 :
떡갈나무 잎사귀

홍 금 자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들

숲속의
전설을 듣는다.

나뭇잎엔
온화한 정이 싹트고
솔바람
생기를 더하면

턱까지 솟아오른
서로의 체취가
조화로운 숨결로
푸르름을 덮는다
잎새마다
웅성대는 7월의 밤
다투어 뿜어대는
욕망의 항구

서로의 목을
휘감은 팔들이
피곤을 턴다.

 

· : 떡갈나무 - 하현식
· 저자(시인) : 하현식
· 시집명 : 그리움에 대하여
· 출판연도(발표연도) :
· 출판사명 :
떡갈나무

하 현 식


길이 있었다
큰 길이 뻗어나간 겨드랑이로
작은 길도 아담하게 뻗어 있었다
큰 길이 가끔씩 기침을 하면
작은 길은 몸통째로 흔들렸다
큰 길의 성큼성큼 내닫는 걸음
한쪽 곁에서
작은 길은 가끔씩 잔기침을 했다
마침내 아장아장 걸어가는
작은 길의 눈꼬리에만
아름다운 떡갈나무의 모습이 잡혔다
그 때 비로소 큰 길의
너무 맹목적인 철학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