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이끼로 세월의 무늬를 새긴 성벽
무덕진 더위에 늘어진 나무
두꺼운 그늘을 가르고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
침묵의 공간을 꿰뚫는 율동의 파문
어두운 수풀에서 튀어나온
새 한 마리 파닥파닥
땅 위에 물수제비뜨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이 자신을 덮치도록
추적의 시선을 유혹하는
환장하게 몸부림치는 어미의 몸짓
배움도 연습도 없던,
저 절절한 춤사위의 근원은 어디인가
단명의 주검 앞에 눈물 한 방울 뿌릴 틈 없는,
팔락거리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흩어진 새끼들 다시 불러 모아
절망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개바람 나도록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달리는
돌진의 발길, 그 눈부신 눈빛
달아오른 아수라장 속에서
루피너스 향기 가슴 깊이 파고든다
안개 속 잎새처럼 너울거리는
아득한 기억의 단층
오른발에는 삶을 왼발에는 죽음을 매달고
누군가 넓은 걸음나비로
가시밭길을 총총히 걷고 있네.
--시와사람 87호(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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